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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7.02 15:23:40
  • 최종수정2026.07.02 15:23:40

박영순

'커피인문학' 저자·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얼마 전 서울 노원구 공릉숲길에서 열린 '2026 경춘선 공릉숲길 커피축제'의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안도감 때문이 아니다.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근본부터 다시 사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커피비평가협회(CCA)가 주관하는 WCC(World Coffee Competition)는 다양한 종목으로 구성된다. 그가운데 올해 바리스타 종목은 처음으로 참가 자격을 장애인에게만 부여했다. 그러나 우리는 명칭에 '장애인'이라는 수식어를 넣지 않았다. 이름은 그대로 '세계바리스타챔피언십(WCC Barista Championship)'이었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우리는 무심코 붙이는 수식어 하나로 대상을 먼저 규정하고 가두어버린다. 이번 대회만큼은 '장애인 바리스타'가 아니라 오직 '바리스타'라는 주체만 남기고 싶었다. 수식어를 지우는 행위는 편견이라는 오래된 기호를 지우려는 작은 첫걸음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실제로 장애를 바라보지 않았다. 에스프레소의 추출 상태와 우유 스티밍의 밀도, 작업 동선의 경제성, 위생관리, 그리고 커피를 이해하는 전문성만이 엄격한 평가 대상이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안영서 CCA 전북본부장은 "우리는 장애를 심사한 것이 아니라 바리스타의 실력을 평가했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는 대회의 존재 이유와 철학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문장이었다.

무대 위 선수들의 모습은 더욱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라인더의 굉음과 스팀이 뿜어내는 뜨거운 수증기 속에서도, 한 잔의 완벽한 커피를 구현하기 위해 끝까지 집중했다. 자신의 기술과 감각으로 세상과 승부하려는 전문 직업인의 얼굴, 그 자체였다. 감동은 장애라는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천 번의 반복 훈련이 만들어 낸 선수들의 숙련과 성실함, 즉 '전문성의 숭고함'에서 비롯됐다.

시상식 풍경 또한 통념의 전복이었다. 약 3천 명의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원구청장이 직접 시상했고, 선수뿐 아니라 그를 오랜 시간 지도한 교사도 함께 무대에 올랐다. 챔피언의 성취 뒤에는 묵묵히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 준 교육자의 보이지 않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지역사회와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승한 최지망 선수를 가르친 김제시장애인평생교육센터 조미선 센터장은 "속도보다 방향을 선택했다"고 나직이 말했다. 각자의 고유한 리듬과 가능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비단 장애인 교육을 너머 속도 강박에 갇힌 우리 사회 전체가 새겨야 할 가치로 다가왔다.

대회를 마치고 더욱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배려나 시혜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할 공정한 기회라는 사실이다. 기술을 익히고 실력을 겨루며 사회로부터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경험은 그 어떤 정책보다 강력한 실존적 자립의 토대가 된다.

이같은 무대가 서울만의 이야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 고향 충북에도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충북은 청주공예비엔날레를 비롯해 영동포도축제, 괴산고추축제, 음성품바축제 등 로컬의 서사를 살린 훌륭한 축제 인프라를 꾸준히 축적해 왔다. 그 문화적 토양 속에 장애인의 전문성과 가능성을 인큐베이팅할 수 있는 경연과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담아낼 때가 되었다.

대상이 반드시 커피일 필요는 없다. 다만 커피라면 훌륭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신체적 조건보다 끈질긴 반복 훈련이 정직한 결과로 이어지고, 지역 카페 산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실질적인 자생(自生) 구조를 만들 가능성이 높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장애를 너무 오랫동안 수동적인 '복지의 언어'로만 소비해 왔다. 지역사회가 해야 할 일은 연민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무대를 만드는 일이다. 도전할 기회와 실력을 증명할 무대, 당당히 일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될 때 장애는 한계가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의 기호가 된다.

서울 공릉숲길에서 시작된 작은 실험은 내게 하나의 확신을 남겼다. 커피 무대는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사회를 진화시키는 아름다운 모티프가 될 수 있다. 그 무대가 충북의 푸른 산하에서도 만개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지역의 품격을 높이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품격 있는 정책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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