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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6.25 15:04:16
  • 최종수정2026.06.25 15:04:16

최승옥

음성문인협회 회원

한낮 강렬했던 햇볕도 잦아들고 바람 한 점 없는 오후다. 새들도 바쁜 일손을 지켜보는지 조용하다. 다만 '아삭아삭' 누에가 뽕잎 갉아 먹는 듯한 소리가 생동감 있게 들려온다. 나를 포함해 여덟 명이 일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입을 떼지 않는다. 탁구공만 한 복숭아 알을 씌우느라 앞치마 주머니에서 봉지를 꺼내는 소리만으로도 손놀림이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다. 오밤중에라도 오늘 안으로 봉지 씌우기를 끝내주겠다는 일꾼들이 내겐 천군만마다.

복숭아 생산지인 우리 지역에서는 열매솎기를 끝내자마자 봉지 씌우기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 일은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외국인 인력이 수고해 주고 있다. 우리 밭에도 며칠 전부터 필리핀 사람들이 들어와 작업 중이다. 삼 년 전만 하여도 인근 마을주민이 일을 해 줬었다. 이제는 현장에서 외국인인력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오늘 안에 봉지 씌우기를 끝내려 부지런히 움직였더니 고개가 뻣뻣하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잠시 사다리에서 내려와 사다리 첫 계단에 걸터앉는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다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어제 봉지 씌우기를 끝낸 '백천황도' 복숭아밭에 눈길이 머문다. 노란 웃음꽃이 만발이다. 계획대로라면 봉지 씌우기 작업이 오늘로 끝을 맺을 줄 알았다. 날씨는 덥고 습하다 보니 나도 저들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일꾼들이 끝날 시간이 다가온다. 남은 고랑을 세어보니 다섯 고랑이다. 이 속도라면 두 시간정도면 끝낼 것 같다. 저들이 마무리를 해주지 않으면 나 혼자 사흘은 매달려야 할 상황이다. 더욱이 내일부터 연이틀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마음이 급해졌다.

인력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연장 작업을 부탁했다. 사장은 그들도 사람이라며 피곤하여 안 된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손은 전화기만 만지작거리는데 걸음은 그네들 쪽으로 향한다. 작업자 중 한 여성에게 다가가 사정을 했다. 언어는 잘 통하지 않지만, 손짓을 해가며 남은 나무가 얼마 되지 않으니 오늘 다 끝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마음이 통한 걸까. 내 말을 알아들은 여성이 동료들에게 두 시간 알바를 하자는 설명을 하는 것 같다. 다들 괜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하다는 말이 순식간에 터져 나왔다.

인력은 인력사무실을 통해 알선하게 된다. 날씨는 갈수록 변화무쌍해지고 농사짓는데 하늘이 외면하는 것만 같은 요즘, 사람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알곡을 얻기 힘들다. 인공지능 시대라지만 농사만큼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 뙤약볕 아래에서 외국인 인력이 없으면 자급자족할 만큼의 농사도 어려운 현실이라 늘 감사와 왠지 모를 미안함을 갖고 있다. 그 미안함은 한때 우리나라도 돈을 벌기 위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었고, 어렸을 적 나도 농사를 지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작업자들 덕분에 봉지 씌우기는 끝이 났다. 저들을 데리러 온 사장에게 덕분에 올 농사 풍년 날 것 같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더니, 다 농장주 덕분이란다. 이 사람들을 대할 때 이웃처럼 진심으로 대해주면 저들도 알아서 일을 잘한다는 것이다.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몰려온다. 노란 봉지가 6월 바람에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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