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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6.23 14:19:16
  • 최종수정2026.06.23 14:19:16

장현두

시인·시낭송가

연둣빛 봄을 분홍빛으로 수놓았던 꽃들이 수그러들 때쯤, 산뜻한 노란 꽃 물결이 여름을 연다. 이 주인공은 바로 금계국이다. 꽃이 황금빛 닭의 볏처럼 화려하다고 하여 '금계(金鷄)국'이라는 이름 붙여진 꽃으로 모양은 코스모스와 아주 비슷하나 색깔이 밝은 노랑으로 주로 분홍색 하얀색 코스모스와는 다르다.

몇 해 전에 금계국 몇 그루를 집 뒤 뒷산 비탈에 심었는데 씨가 퍼져 뜰 안이 온통 금계국밭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무심코 방문을 여는 순간 너무 밝아 눈부신 노랑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산뜻하고 밝은 '따스함'이 온몸을 단숨에 녹여주는 느낌이었다.

초여름은 특히 도롯가에 끊임없이 금계국의 따스한 물결이 넘친다. 이런 노랑 물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진다. 노랑이 주는 선물이랄까. 노란색은 밝음과 희망, 위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온 국민의 마음에 아직도 깊은 아픔으로 남아 있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리본이 노란색이다. 이 노란 리본을 보면 왠지 슬프고 가슴이 짠하다. 노란 리본의 유래는 미국에서 군인이나 인질의 안전한 귀환을 기다리는 표시로 나무에 노란 리본을 묶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추모와 기억의 상징을 담았다.

이와 같은 밝음과 희망, 그리고 위로의 이미지를 갖는 '노랑'의 역사는 인류 문명사에서 흥미롭고 근원적이다. 태양, 빛, 황금, 곡식의 색이 노랑으로 인류는 노랑(黃色)을 가장 오래전부터 특별하게 여겨왔다. 태양과 빛은 생명, 희망을 상징하고, 황금은 부와 권위를, 익어가는 곡식은 풍요와 수확을, 노랑 꽃가루와 노란 꽃은 생명력과 기쁨을 상징했다. 중국에서는 노랑을 황제의 색으로 여겼고, 조선에서도 오방색 가운데 중앙을 뜻하여 안정과 조화를 상징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신의 색으로, 중세 유럽에서는 황금과 성인의 후광을 표현하는 색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하는 색이 녹색이라면 노랑은 희망과 위안을 주며 때로 슬픔까지도 표현한다. 오랫동안 숲에서 살아온 인간은 녹색의 유전자를 갖게 되어 녹색은 우리 몸에 체화되었고, 노랑은 눈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여 의미를 부여해 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초여름 금계국에 이어서 또 하나의 노랑 물결을 만들어내는 모감주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가지를 툭툭 뻗어내며 잎을 무성하게 달아 시원시원하게, 빠르게 자란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신라 황금빛 왕관 같은 꽃차례를 수도 없이 피워 마치 황금물결이 이는 인도의 궁전 지붕을 보는 느낌을 준다. 꽃이 지고 나면 꽈리 같은 열매를 주렁주렁 다는 모습도 보기 좋고 열매가 익으면 속에 까만 콩알만 한 씨가 달려 염주를 만들기도 해서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집 뜰에 모감주나무 한 그루 정도 심어 여름날의 그늘과 마음의 평안을 선사하는 노랑 물결을 감상하면 어떨까 한다.

가을의 노랑 물결은 단연 누런 들판이 주연이며 노란 국화가 조연으로 온다. 누렇게 익은 황금 들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르고 아침 이슬을 먹은 노오란 국화는 서정주 시인 아니라도 시심을 자극한다. 봄에 개나리, 산수유로 시작한 노랑 물결이 여름에는 금계국과 모감주나무로 절정을 이루고 가을 국화로 대미를 장식한다.

나는 올여름도 노랑 물결 따라 출렁이면서 빠른 걸음으로 가는 세월을 푸근한 가슴으로 보낸다. 자연이 주는 파도 같은 선물이며 색감이 주는 신비에 감사하며 계절 따라 자연이 다양한 색감으로 빚어내는 물결 속에서 하루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엄청난 행복을 누린다.

감사하고 감사하며, 저 환하게 웃는 금계국꽃처럼 오늘도 나는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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