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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6.18 15:38:03
  • 최종수정2026.06.18 15:38:03

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단아한 모습의 그녀가 먼저 보인다. 삼십 년 넘게 문우로 맺은 그녀의 팔순 잔칫날이다. 좋은 날이라 그런지 미소를 띤 얼굴이 환하다. 요즘 보기 드문 자리에 초대받아서 마음껏 축하를 보낸다.

그녀의 친척과 가까운 지인이 특별한 생일날 초대되었다. 남편이 없는 자리를 채워주는 네 남매의 마음이 느껴졌다. 평소 자녀들이 얼마나 살뜰하게 혼자 계신 그녀를 챙기는지 알고 있었다. 문학모임에서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딸이 함께하던 여행이었다.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노년이 참 다복하다는 생각에 잠긴다. 그때 '네 번째 스무 살'이라고 어머니의 팔순을 축하하는 딸의 말이 귀에 꽂힌다. 여든이라는 나이를 뒤집어 생각하게 만드는 그 다정한 표현이 한참 동안 마음에 머물렀다. 주름진 얼굴 위에 다시금 스무 살의 푸른 봄날을 얹어주는 자식들의 깊은 사랑과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행복으로 차오른다.

친정엄마도 올해 팔순이시지만 생일 때 모여서 조촐하게 식사만 하고 지나갔다. 엄마의 지워져 가는 기억과 쓸쓸했던 팔순 잔치를 떠올리니 아리다. 슬픔은 이내 내 미래에 대한 묵직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나의 네 번째 스무 살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가.' 치매라는 거울을 통해 바라본 노년은 모두가 힘든 현실이었다. 나이 듦의 가장 큰 축복은 마지막 순간까지 맑은 정신으로 내 삶을 기억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게 건강을 다지는 것, 그것이 내 노후의 가장 첫 번째 의무이자 자식을 향한 최고의 사랑일 것이다.

또한, 기억이 사라져도 채워질 인품을 가꾸고 싶다. 내 몸과 몸짓에 깃든 따스한 인품만큼은 마지막까지 은은하게 향기를 발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마음을 닦아나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비우고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내 손에 쥔 것들을 움켜쥐기보다 자연스럽게 내려놓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질적인 욕심을 비우고, 내가 살아오며 얻은 지혜나 따뜻한 시선을 주변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훗날 내 자식들이 나의 여든을 맞이해 줄 때, 화려한 잔치나 거창한 현수막이 없더라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참 좋은 인생'이었다고 미소 지을 수 있는 평안함을 남겨주고 싶다.

행사 때마다 자주 먹던 음식이었지만, 코스로 나온 요리를 모두 비울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평소 잘 먹지 않던 문우도 비울만큼 최고였다. 그녀가 살아 온 인생이 빛나는 순간이다. 모나지 않게 베풀고 너그러운 인품으로 살아온 시간과 언행이 오롯이 담긴 자리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 예민하게 굴고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일이 생각난다. 그녀처럼 행복한 내 삶의 네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는 것은 내 몫이다.

떠오르는 아침 해보다 저녁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의 황홀경을 마주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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