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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6.18 15:36:31
  • 최종수정2026.06.18 15:36:31

김경숙

(전)청주시평생학습관장

직접 원두를 볶고, 천천히 향을 음미한다. 앞으로의 삶도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을 닮았으면 좋겠다. 그런 설렘으로 바리스타 자격증 교실 문을 두드렸다.

까맣게 그을린 원두를 보니, 어릴 적 친구들과 쥐불놀이 하며 콩을 볶아 먹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원두를 갈고, 가루를 고르게 펴 평평하게 다지는 도징 작업을 마친다. 적절한 온도와 압력으로 추출된 에스프레소가 작은 잔에 담긴다. 한 모금 머금으면, 그윽한 향이 천천히 퍼진다.

에스프레소에 부드러운 우유를 더해 만든 카푸치노는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숟가락으로 살며시 건드리면, 캐러멜 빛 크레마가 부드럽게 일렁인다.

아마도 시간에 쫓기듯 살아온 탓일까. 다른 수강생들은 여유롭게 커피를 내리는데, 나는 여전히 조급하다. 짧은 추출 시간조차 견디지 못하고 시계를 들여다본다. 오랜 시간 '빨리빨리'를 외치며 살아온 습관은 커피 잔 앞에서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조급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커피를 내리면서도 자꾸 다음 과정을 떠올리고, 결과를 먼저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몇 번의 실패를 거치며 알게 되었다. 서두른 손길에서는 결코 좋은 향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물이 스며드는 시간, 커피가 숨을 고르는 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비로소 온전한 한 잔이 완성된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멈추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기 시작했다.

커피를 배우는 시간은 기술만 익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첫 만남이 에스프레소처럼 진했다면, 이제는 카푸치노처럼 부드러운 사이가 된 한 수강생이 있다. 그녀는 손맛이 좋다. 어느 날, 직접 빚어 온 만두를 나눠주었다. 그 따뜻한 맛이 오래 입안에 머문다. 가게를 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그만두었다는 그녀는, 신선한 재료를 고르고 정성껏 만두를 빚어왔다.

명절마다 만두를 빚고 나면 며칠씩 앓아눕던 기억이 떠올라, 그녀의 만두는 더 깊게 마음에 남았다.

그녀가 커피를 배우는 이유는 조금 달랐다. 나는 그저 커피가 좋아서 제대로 알고 마시고 싶었지만, 그녀는 인근 복지관 카페에서 봉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누군가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누군가는 타인의 온기를 위해 커피를 내린다. 조급했던 나의 손길도 조금씩 느려진다. 잔 속에 담긴 것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보듬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커피가 나를 증명하려 애쓰는 에스프레소였다면, 그녀의 커피는 타인의 빈 곳을 조용히 채워주는 카푸치노였다. 커피의 향은 잔을 비우면 사라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마음에 머물러 오래 남는다.

어느새 나는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천천히 스며드는 것이 더 오래 짙은 향을 남긴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오늘도 커피를 볶는다.

고운 심상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부드러운 카푸치노 한 잔을 조용히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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