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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6.16 14:33:31
  • 최종수정2026.06.16 14:33:31

김문석

시인·전 국립대학교 교수

봄은 꽃으로 기억된다. 산과 들이 화사하게 물들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설렘을 안고 길을 나선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하려 사진을 찍고, 고운 빛깔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꽃은 분명 한 계절의 찬란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자연은 결코 한 자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절정을 이루는 순간에도 이미 다음 계절을 묵묵히 준비하고 있다.

어느새 6월의 길목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방을 수놓았던 화려한 꽃들은 하나둘 숨바꼭질하듯 사라지고, 그 자리를 짙은 초록이 채워간다. 우리는 꽃이 질 때 비로소 아쉬워하지만, 나무는 조금도 서두르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그저 꽃이 떠난 자리를 초연하게 잎으로 채우며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 삶도 이와 참 닮아 있다. 젊은 시절 우리는 누구나 꽃처럼 만개하기를 꿈꾼다. 남보다 앞서고 싶고, 세상의 인정을 받으며 성공의 정점에 서기를 바란다. 더 높이 올라가려 애쓰고, 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분주하게 살아간다. 그 열정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 꽃이 피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향후 결실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의 가파른 고개를 넘어설수록 가슴으로 깨닫게 되는 진실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눈부셨던 한때의 순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힘든 시간을 버텨낸 인내,넘어져도 다시 일어섰던 용기, 주변을 따스하게 배려하던 마음이 결이 되어 더 오래도록 남는다. 세상은 누군가의 화려한 성공을 그리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따뜻했던 말 한마디, 어려울 때 내밀어 준 손길, 한결같은 성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에 깊이 각인된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높은 자리에 올랐던 이보다 신뢰할 수 있는 이가 존경을 받고, 많은 것을 가진 자보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가 더 그리워진다. 결국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겉모습의 화려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깊이에서 드러난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이들이 머물고 있다. 평생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해온 사람,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해 온 이들이다. 자신을 크게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지만, 맡은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는 이웃들. 그들은 꽃처럼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한다. 그러나 큰 나무 그늘처럼 지친 이들에게 쉼이 되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오늘날의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더 자극적인 것, 더 화려한 것, 더 눈에 띄는 것만을 요구하는 듯하다. 하지만 거품이 걷히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반짝이는 외양이 아니라 본질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는 세월의 바람과 함께 희미해지지만, 인품과 신뢰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은은한 빛을 발한다.

어쩌면 인생은 오직 꽃을 피우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꽃은 잠시 한 계절을 아름답게 장식할 뿐, 그 나무를 지탱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묵묵한 줄기와 보이지않는 깊고 단단한 뿌리다. 사람의 가치 역시 외적인 영광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삶의 태도와 온기일 것이다.

그렇기에 6월이 주는 가르침은 유독 특별하다. 화려한 계절을 지나 내일의 완숙으로 들어서는 시간. 무엇을 더 보여줄 것인가보다, 삶을 어떻게 더 의미 있게 채울 것인가를 사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꽃이 진 자리에 남는 것은 결코 허전함이나 상실이 아니다. 그 자리에는 더 강인해진 생명력이 깃들고, 깊어진 시간이 쌓이며, 열매를 위한 희망이 자라난다. 그래서 6월의 청록은 꽃보다 더 깊고 아름답다. 화려함은 지나갔을지라도, 남겨진 푸르름은 세월이 길러낸 삶의 중후한 멋이자 눈부신 내일을 준비하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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