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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6.09 13:36:47
  • 최종수정2026.06.09 13:36:47

김혜식

수필가

30 여 년 전, 필자가 문단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당시 필자가 속한 문학 단체장을 맡았던 여성 문인이 이런 말로 충고를 해왔다. " 얼굴도 예쁘고 필력도 남다른데 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내느냐·" 라고 말이다. 그녀 말 속에 내포된 뜻을 얼핏 몰라서 한참 생각을 할 즈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당신 필력이라면 문단에 널리 필명을 알릴 수 있고 줄만 잘 잡으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는데 왜· 조용히 글만 쓰느냐·" 라고 한다. 나로선 뜻밖의 말이라서 당황했었다. 그 시절엔 별다른 욕심 없이 문학을 무슨 악세사리처럼 가슴에 달고 젠체하기보다는 오로지 글 쓰는 게 좋아서 묵묵히 글만 써온 터였다. 그래서 그녀의 말뜻을 선뜻 알아챌 수 없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녀 말 중 비위를 건드린 것이 있었다. " 줄만 잘 잡으면" 이었다. 이 말은 문단에도 일명 빽이 존재하고 심지어 그것이 필력보다 우위이고, 줄은 문단의 권력 후광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던가. 이런 폐단이 순수문학과 선비 정신을 지향하는 문단까지 작용 한다는 사실엔 갑자기 입맛이 씁쓸했다. 한편 그동안 문학을 순수 예술이라고 여겼던 자신이 부끄럽기 조차 했다.

사실 예술은 빵과 맞바꿀 순 없다. 그 때는 문학이 돈벌이나 혹은 영달의 매개체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지론이 가슴에 확고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에 그녀 말에 반발심까지 생겼었다. 그러나 머잖아 이런 마음에도 약간의 동요가 일었다.

풍문에 의하면 모 문인은 문단에 입문한지 불과 몇 년 안 돼 중앙 문단에서 그의 작품이 조명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채 익지 않은 문리(文理)로 문학상까지 이곳저곳에서 수차례 수상했다는 소식엔 솔직히 은근히 부러움도 앞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단체마다 임원으로 나서고 있으며 그로인하여 문학성도 덩달아 인정받기도 한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필자 역시 속물이어서 인가 보다. 처음엔 이런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왜· 나는 이리 주변머리가 없는가· '자책하기 일쑤였다. 평소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질색이고 성향 역시 잇속을 위하여 줄잡는 일 따윈 서툴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방법으로 문탑(文塔)을 쌓는 사람에게 보냈던 박수갈채가 무용지물이었음을 깨달았다. 문인은 오로지 글로 말하지 않던가. 빈 수레가 요란했다면 지나치려나· 어려서 어머니는 항상 겉보다 속이 알찬 사람이 되라고 타일렀다. 더구나 어떤 일이든 단박에 승부수를 걸지 말고 꾸준히 쉬지 말고 목적을 향해 노력하며 전진하라고도 하였다. 요즘도 가끔 마음이 뒤척일 때마다 지난날 어머니 말씀을 떠올리곤 한다.

어느 가을밤 온 누리에 은은히 비추던 달빛 아래 피어난 박꽃의 처연함과, 지난 봄 날 눈처럼 흰 이화(梨花)의 아름다움에 매료 된 적이 있다. 달빛이 아니었더라면 이 두 꽃의 진면목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역시 향후 박꽃과 배꽃처럼 달빛에 그을린 듯한 순결한 작가 정신으로 글을 써서 독자들 마음을 한껏 훔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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