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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6.07 14:35:49
  • 최종수정2026.06.07 14:35:49

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삶을 이루는 세 가지 기둥으로 天運, 地運, 人運을 꼽는다. 하늘이 내린 절대적인 命인 천운, 태어난 대지와 환경이 부여한 조건이자 재능인 지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인복인 인운은 운명론적 지도를 구성한다. 그러나 유독 인운만이 자유의지와 노력이라는 영역에 문을 열어두고 있다. 이는 단순히 '좋은 사람을 만난 행운'을 뜻하지 않는다. 인운을 개척한다는 것은 자신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타자(他者)들과의 관계를 능동적으로 엮어내어 삶의 방향성을 창조해 나가는 주체적 결단이다.

천운과 지운이 인간이 선택할 수 없이 이미 그곳에 던져진 '피투성이' 조건이라면, 인운은 그 던져진 자리에서 스스로 어디로 기획해 나갈 것인가라는 '기투' 영역이다. 거쳐 갈 나루터와 역, 길가 이정표를 눈앞에 보듯 선명히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성찰하는 삶'과 맥을 같이 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모르는 자는 타인을 만나도 그가 귀인인지 악인인지 분별할 수 없다. 목적지가 분명한 여행자만이 자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안내자를 알아보고 그 손을 잡을 수 있다.

융은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해 버리고,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고 했다. 끊임없이 세상을 원망하며 천운과 지운만 탓하는 이들은 실패를 외부 환경이나 타고난 운명으로 돌리며 무력감에 빠진다. 반면 능동성과 긍정성을 지닌 이들은 모순 속에서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변수, 즉 '내 행동'과 '내가 맺는 관계'에 집중한다. 아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내면과 목표를 명확히 의식화했다는 의미이며, 명확한 인지적 지도를 가진 인간은 타인과의 조우를 단순한 우연이 아닌, 삶의 외연을 확장하는 심리적 연대로 승화시킨다.

이러한 주체적 운명 개척은 신화 속에서 변덕과 예언이라는 거대한 굴레로 표현된다. 오디세우스 여정을 보면, 그는 포세이돈 저주라는 가혹한 천운과 바다라는 거친 지운에 가로막혀 20년 동안 방랑했다. 그러나 그를 결국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게 만든 결정적인 힘은 그의 '지혜'와 그가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역동이었다. 그는 네스토르에게 길을 묻고, 알키노오스 왕의 호의를 얻어 배를 구했으며, 충성스러운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의 도움으로 왕권을 되찾았다. 만약 그가 신들의 장난을 탓하며 긍정성과 능동성을 잃었다면 칼립소 섬에서 영원히 은둔자로 남았을 것이다. 아는 것이 분명했기에 그는 세이렌의 유혹 속에서도 돛대에 자신을 묶어 방향을 잃지 않았고, 마주치는 인연들을 귀향이라는 미래의 순방향으로 엮어내었다. 영웅이란 신이 정한 운명의 모순을 거부하는 자가 아니라, 그 모순을 품고서도 자신의 걸음을 멈추지 않는 주체적 인간의 다른 이름이다.

모순은 부재했던 적이 없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미래에도 인간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모든 대지에는 부조리와 갈등이 도사릴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모순을 대하는 인간의 정체성이다. 아는 것이 분명하여 중심을 잡고, 배운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지행합일 태도를 견지할 때, 인간은 비로소 환경의 노예에서 자기 삶의 군주로 거듭난다. 긍정성과 능동성은 다가오는 운을 붙잡는 자석과 같다. 노력 없이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있는 자에게 천운은 침묵하고 지운은 척박할 뿐이다. 거쳐 가야 할 여관의 개수와 나루터의 거리를 훤히 꿰뚫어 보듯 삶의 지도를 치열하게 공부하고, 그 길 위에서 마주하는 인연들을 귀하게 엮어 나갈 때, 달아나던 운명도 마침내 고개를 돌려 인간의 노력 앞에 순응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인운을 통해 천운과 지운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정한 인간 주체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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