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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5.28 15:18:40
  • 최종수정2026.06.28 15:01:46

류상현

세명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조교수

"말은 제주로, 사람은 한양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 속담에는 지방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오래된 마음이 담겨 있다. 좋은 말은 제주에서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크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학생들에게서 서울로 가겠다는 말을 당연하게 듣는다. 하지만 2026년을 사는 우리에게 이 말은 여전히 진리일까· 정말로 "성공"과 "행복"은 수도권에만 있는 걸까·

지방에서 자란 청년들의 고민은 솔직하다. 여기 있으면 기회가 없다고 하고 퇴근하고 나면 할 일이 없다. 일자리와 문화 사람 문제까지 이야기한다. 그래서 서울행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 옵션처럼 느껴지곤 한다. 더 많은 회사 더 다양한 모임 더 많은 선택지가 수도권에 모여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지방이 우리 아이들에게 아무 매력도 없는 공간인 것은 아니다. 지방 도시와 농어촌에는 수도권이 가지지 못한 강점이 분명히 있다. 출퇴근이 짧고 집 앞만 나가도 산과 강이 반겨 주며 단골 카페 사장님이 먼저 인사를 건네 준다. 삶의 속도는 조금 느리지만 대신 숨을 고를 여유가 있다. 요즘처럼 번아웃을 입에 달고 사는 시대에는 이것만으로도 큰 자산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기 좋은 동네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지역의 조건은 거창하지 않다. 고향에서 할 일이 보여야 한다. 대기업 취업만이 답은 아니며 로컬 카페·공방·서점 같은 동네 가게부터 지역 농수산물을 활용한 온라인 판매, 프리랜서 디자이너, 개발자처럼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직업들도 있다. 지금은 인터넷과 택배만 있으면 전국을 상대로 일할 수 있다 지방에 산다고 해서 기회 자체가 없지 않다. 다만 기회를 발견하고 연결해 줄 눈과 손이 더 필요하다.

감당 가능한 주거가 있다면 지방의 장점은 더 빛날 것이다. 수도권에서는 월급의 절반이 월세로 사라지는 일이 흔하지만, 지방에서는 조건만 맞으면 저렴하게 넓고 쾌적한 집을 구하기도 쉽다. 방 하나가 아니라 집 하나를 얻는 경험은 청년에게 엄청난 자유를 줄 것이다.

심심하지 않은 동네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대형 쇼핑몰이 없어도 주말마다 열리는 벼룩시장 동네 밴드 공연 작은 독립서점의 북토크 같은 것들이 모이면 마을은 살아난다. 요즘은 로컬 브루어리 로컬 카페 지역 상표를 만드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노잼 도시라는 말은 실제로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찾아본 적이 없어서 붙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재밌게 살 수 있는 요소들이 하나둘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시선이다. 지방에 남거나 도시를 떠나 지방으로 내려오는 청년에게 거기서 뭐 먹고 사니· 라고 묻는 분위기 속에서는 누구도 편히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반대로 어떤 걸 해보고 싶니· 같이 한번 만들어 보자 라는 말이 오가는 곳에서는 청년이 도전해 볼 용기가 생길 수 있다. 지방에 남는 선택이 서울에서 밀려난 패자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고른 선택으로 존중받을 때 비로소 그곳은 청년에게 집이 된다.

지방에서의 삶이 언제나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답답할 때도 답이 안 보일 때도 있는 것은 서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어디에 살든 힘든 점과 좋은 점은 함께 있다. 다만 지방에는 넓은 하늘, 숨 쉴 거리 나만의 속도를 찾을 수 있는 여지가 더 많고 그것을 채워 넣을 사람은 바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한양으로"라는 말은 분명 한 시대의 현실을 잘 보여 준 속담이지만 다음 세대의 삶까지 그 말에 가둘 필요는 없다. 이제는 말은 제주로 사람은 자기가 숨쉬기 좋은 곳으로 그곳이 서울일 수도 있고,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이 지방 도시일 수도 있다.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꿈의 크기를 줄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곳에서는 남들이 밟지 않은 길을 당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만들어 갈 수 있다. 여러분이 살기 좋은 동네는 어쩌면 이미 당신 곁에서 조용히 자라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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