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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5.25 15:37:55
  • 최종수정2026.05.25 15:37:55
내 나이 불혹을 넘긴 겨울이었다. 연말 부부 동반 송년회가 유행하던 시절이다. 아이들이 어려서 안 나갔었는데 그해에는 참석해야 한다고 남편이 말했다. 저녁 식사 후 노래방으로 갈 것이 뻔하다. 그의 직장 연륜을 내 노래 실력이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나는 메조소프라노 음역이다. 가곡을 불러보면 고음의 한계로 성에 안 찬다. 조바꿈해서 불러보면 키를 낮추어서인지 귀가 만족 못 한다. 트로트를 불러보면 구성지게 꺾이며 넘어갈 때 테크닉의 한계를 느낀다. 모든 노래에는 작사가 작곡가의 혼이 담겨 있는지라 심취해 불러야 하는데 어떤 노래를 불러도 여간해서 감흥까지 오르지 않는다.

그날 성안길을 걷고 있었다. 음악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발목을 잡았다. 박미경 가수가 부르는 '민들레 홀씨 되어'란 노래다. 걱정을 하던 차라 악보를 샀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불러보았다. C장조 악상으로 저음 G부터 한 옥타브 위 C까지 11개 음역이다. 피날레에서 맘껏 음을 뿜어내도록 구성됐다.

달빛 부서지는 / 강∼가에 홀로 앉아 있∼네/소리 없이 흐르는 / 저 강물을 바라 보∼면/음∼가슴을 에이며 /밀려오는 그리움 그리움……(중략)

발라드풍의 멜로디와 노랫말이 나의 정서다. 그해 송년 부부 모임에서 이 노래를 불렀고 앙코르를 받았으니 성공한 셈이다. 그때부터 '민들레 홀씨 돼 '행진이 이어졌다. 계모임, 동창 모임마다 이 노래를 불렀다. 한번은 지인과 걷던 중, 이 노래가 흘러나오자 "자기 노래 나오네" 하고 말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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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나는 왜 이 노래를 부를까. 노랫말처럼 똬리 틀고 있는 그리움이 내 안에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내 그리움은 형체가 분명하지 않다. 민들레처럼 간결하게 뼈대가 드러나지 않는다. 형체가 희미하다 해서 그리움이 희미한 건 아니다. 오히려 강렬하고 끈질기다. 확연한 사랑만큼이나 집요하다. '확연한 사랑만큼'이라고 하는 건 사랑이랄 수는 없어서다. 명징하지 않기에 명료하게 설명은 못 해도, 별처럼 휘황하지는 않아도, 설렘 직하고 동경할 만해서다.

늙지도 않고 퇴색하지도 않는 그것들은 무엇일까. 그것들은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내 것일 수 없는 것들이다. 가령 바라는 것들이라든지, 꿈, 욕망 같은 것들이다. 닿을 수 없기에 이룰 수 없기에 바라보고 욕심내게 되는 것들이다. 애틋한 그것들은 심연에 침잠해 있다가도 불시에 올라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노래를 만난 후부터는 박차고 일어나 피아노와 마주한다. 노래를 부르면서 산산이 부숴 훨훨 날려버린다.

노래에 물들어보시라. 취향 따라 어느 노래든 선택하여 물들어보시라. 그 노래가 정서를 좌우하리니. 경쾌한 노래에 취해 보시라. 생각의 세상은 봄날이 되리니. 꽃들은 형용키 어려운 아리아리한 색깔들로 물들고 마음은 새처럼 창공을 날게 되리니. 즐거운 노래에 마음을 얹으면 천상을 난다. 고요한 노래를 부르면 들끓던 마음이 평온해진다. 노래를 부르며 리듬에 몸을 맡기면 절로 춤이 된다. 이 노래를 불러보시라. 이 노래에 한 번 취해 보시라. 어느새 마음은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날아가 어딘가에게 닿으리니. 이룰 수 없는 꿈도, 지나간 추억도,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진심이 된다. 먼지도 아닌 홀씨 같은 것들이 상상의 늪으로 데려간다. 이 노래를 부르면 감성의 세포가 솜털같이 일어나 훨훨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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