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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5.19 17:26:40
  • 최종수정2026.05.19 17:26:40

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김해에서 조카 결혼을 마치고 부산으로 향했다. 큰아들이 다음 날 여행하자는 한마디에 일정을 바꿨다. 두 달 전 가정을 꾸린 둘째는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가장의 무게를 당차게 받아들이고 있다. 서른 넘은 큰아들이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해운대로 가는 길은 차가 막혔다. 유명한 관광명소인 만큼 주말이라 관광객이 많은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주차하고 바닷가로 걸어갔다. 가까워질수록 음악 소리가 크게 들리고 관객들의 함성도 들린다. 알고 보니 마침 모래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거대한 모래 조각들이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정교한 자태로 솟아 있었다.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바다로 흘러내릴 것 같은 부드러운 모래가, 예술가의 손길을 거쳐 단단한 형상으로 거듭난 모습이 경이로웠다.

백사장은 이미 전국 각지, 아니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파도 소리, 그리고 각양각색의 언어들이 한데 뒤섞여 해운대의 밤바다를 채우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는 아들의 어깨를 슬며시 바라보았다. 어느새 나보다 훌쩍 커버린 아들은 든든한 그림자가 되어 내 곁을 지키고 있다. 어릴 적 손을 잡고 걸어야만 했던 아이가, 이제는 군중 속에서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앞장서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묘한 대견함과 함께 세월의 빠른 흐름이 체감되었다. 오늘 밤, 해운대는 또 다른 추억으로 기억되리라.

숙소는 산이 보이는 곳으로 마음에 들었다. 계획된 일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여유로웠다. 근처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고 범어사로 향했다. 전날의 바다가 수많은 사람이 부딪히는 축제였다면, 오늘 마주한 산사는 고요하고도 엄숙한 수행의 공간이다. 하지만 사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평소의 고요함과는 다른 경건한 활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일주일 남겨두고 위안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목은 온통 천연색의 연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을 가릴 만큼 빽빽하게 매달린 연등의 행렬은 마치 오색 빛깔의 구름이 절 마당에 내려앉은 듯한 장관을 연출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연등 아래 매달린 작은 이름표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마치 수많은 이들이 가슴속에 품은 간절한 염원들이 모여 부르는 나지막한 기도 소리처럼 들렸다.

고즈넉한 사찰의 처마 끝에 걸린 풍경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굳이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 같은 바람을 느끼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바쁘게 흘러갈지라도, 가족이 나누는 온기가 힘을 준다.

눈을 감으니 해운대의 푸른 파도 소리와 범어사 오색 연등이 바람에 흔들리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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