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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5.19 17:29:29
  • 최종수정2026.05.20 16:01:03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작은 권력이라도 쥐어주고 나서 하는 꼴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권력자의 사악한 본성을 간파한 명언 중의 명언이다. 흔히 권력과 지위를 얻고 거들먹거리는 자들의 같잖은 행태를 '완장효과'라 질시한다. 완장(腕章)은 맡은 소임을 알리기 위해 직책 등을 새겨 팔에 두르는 띠다.

완장을 차는 순간 제가 뭐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며 갖은 꼴값을 떠는 예가 흔하지만 사실 완장은 완장을 채워준 사람의 권한을 잠시 대행하는 정도의 하찮은 권력이다. 넓적한 띠에 직함을 써서 팔에 두른 후 핀으로 고정하는 완장은 쉽게 달고 쉽게 떼버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해서 완장과 같은 벼락감투는 떨어지는 것도 일순간이다.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저수지를 배경으로 한 윤흥길의 장편소설 '완장'은 마을건달이 우연히 완장을 얻게 된 후 부리는 호가호위를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주인공 임종술은 서울에서 벌이던 이런저런 일거리를 모두 말아먹고 낙향해 남의 저수지에서 도둑 낚시질이나 하며 지내는 건달이다. 어느 날 땅 투기로 돈을 번 최 사장이 저수지에 양어장을 만들면서 그 관리를 임종술에게 맡기게 된다.

'감시원' 완장을 찬 임종술은 저수지를 제 것처럼 접수한다. 몰래 고기를 잡던 어릴 적 친구부자를 폭행하여 친구아들의 귀청을 터지게 만드는 등 갖은 패악질을 일삼던 임종술은 점점 완장놀이 빠져 급기야 완장을 차고 읍내까지 진출한다.

제 분수를 잊고 날뛰며 완장질에 취한 완장 임종술을 소설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완장은 제가 무슨 하늘같은 벼슬이나 딴 줄 알고 살판이 나서 신이야 넋이야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마냥 휘젓고 다니는 데 일단 재미를 붙이고 나면 완장은 대개 뒷전에 숨은 만석꾼의 권세가 원래부터 제 것이었던 양, 바로 만석꾼 본인인 양 얼토당토않은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완장질에 취해있던 임종술은 결국 경찰에 쫓기는 처지가 되어 도망친다. 저수지 수면 위에 떠다니는 아들의 완장을 어머니인 운암댁이 지켜보는 것이 소설의 말미다.

이처럼 어떤 환경이나 시스템이 원인이 되어 사악한 행동을 발생시키는 상황을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라고 한다.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의 '짐바르도' 교수는 '스탠퍼드 교도소'라는 모의 교도소를 만들고 '무엇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지'를 실험했다.

그는 교도소 생활이 인간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기 위해 일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범죄와 마약관련 병력이 없는 18명을 선발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을 교도관과 죄수로 나누어 모의 교도소에 배치하고 2주 동안 심리변화를 관찰했다.

실험초기, 맡은 역할에 적응치 못하고 어색해했던 참가자들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변해갔다. 교도관 완장을 찬 참가자들이 죄수역할의 참가자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며 가혹행위를 견뎌야 했던 죄수 역할 참가자들이 공포에 질려 중도포기를 선언했고, 실험은 6일 만에 종결됐다.

'샛별'의 의미를 지닌 '루시퍼(Lucifer)'는 하나님이 가장 총애하던 천사였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여 하느님과 동등해지려다 지옥으로 떨어진 천사의 이름을 완장효과에 붙인 심리학자의 의도가 예사롭지 않다.

삼성전자 총파업을 주도하는 최대 노동조합 임원들의 극단적 전횡이 해도 너무한다 싶다. 완장을 채워놓으니 보이는 것이 없어진 모양이다. 직장도 국민도 국가도 안중에 없는 안하무인이 완장 때문이라면 그 완장 잡아 떼 주는 것이 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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