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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5.14 17:16:28
  • 최종수정2026.05.14 19:06:22

박주영

시인·수필가

오늘은 3월 23일이다. 살짝 겨울의 공기를 머금은 3월 하순의 아침이 밝았다. 지루했던 겨울을 보내고 새봄을 맞이하면서 자그마한 설레임이 시작되었다. 꽃밭가꾸기는 내 일상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힘듦이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겉옷을 가볍게 풀어놓는다. 나는 3년된 무궁화나무를 옮겨심느라 바쁜시간을보낸다. 묵은 황토흙 내음을 맡으면서 나무사랑에 빠진다.

대전에 살고있는 아들에게서 카톡문자가 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확인했다.
" 엄마 오늘 생일인데 일만 하지말고 즐겁게보내세요. 충주 맛집에 예약했으니 오붓하게 두분이 다녀오셔요. 함께 참석 못해서 죄송해요" 며느리도 한마디 거든다. "어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그래 고맙다"
나는 연락을 보내놓고도 무궁화나무 심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남편은 하우스 잔일들을 하느라 바쁜시간이다.

전주에서 살고있는 딸내미에게서도 연락이왔다.
"올해는 바빠서 못올라가니 맛난 밥 챙겨드시고 드라이브라도 댕겨오세요" 라고 말하고 손자인 현민이는 녹음을 해서 보내왔다.
"할머니 오늘 제가 올라가지 못하지만 다음에는 편지랑 선물 준비해서 드릴게요 사랑해요"
"그래 현민아 니 목소리만 들어도 할머니는 한없이 기쁘고 행복해 사랑한다" 라고 보냈다. 눈물이 조용히 볼을 타고 내린다.

5시경에 흙 묻은 손을 털어내면서 드라이브라도 할겸 집을 나섰다. 충주 종댕이길에 도착할 무렵 아들에게서 영상 전화가왔다. "재미있게 지내고있죠·· 지금 집에 없네요· 어디야·"
"여기 종댕이길이야 바쁜데 왠 전화까지했어··"
"사실은 우리 지금 음성 어머니 집에 왔어요. 재미있게 하려고 속였던거야. 할머니 주향이예요" 손녀딸 목소리가 낭랑하게 들린다.
"아니 뭐라고··"
우리부부는 그만 할말을 못하고 서로 바라보았다. 우리 가슴은 살랑살랑 뛰고있었다. 남편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종댕이길 입구에서 아들네 가족과 웃는 모습으로 서로를 껴안았다. 아들과 함께 숲길을 걷는다. 나무들이 아직은 앙상하지만 잔가지 사이로 봄을 준비하고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들이 마음깊이 스며들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가 낮은 목소리로 봄을 부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니 맑고 청명하다. 무거운 겨울을 내려놓은 하늘색이 무척 가벼워보이고, 서쪽 하늘의 노을빛이 유난히도 아름답다. 온 산들이 봄을 시작하는 기운으로 가득차있다.

그 숲길을 1시간 가량 걷다보니 다리가 지쳐서 예약한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아들은 6시 30분 예약 시간을 꼭 지켜야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좀 의아했지만 나는 참기로하고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7시로 다시 미뤄야겠다고 했다. 유명한 맛집이라서 바빠서 그렇다나·· 그래·· 나는 더 이상 묻지않았다. 여기까지와준게 너무나 고마워서~

식당에 도착했다. 오랜시간 숲길을 걸어서인지 다리에 힘이 빠졌다. 식당 문이 열리면서 나는 깜짝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않았다. 그곳에 전주 딸내미 가족이 앉아있지 않은가!! 내가 꿈을 꾸나··
"할머니"
손자 둘이서 달려와서 나를 안았다.
"써프라이즈"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맞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그거였다. 내 옆에서 사위가 빙그레웃는다. 오늘은 평일이라서 바쁠텐데 여기까지 와주다니~

다음은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너희들이 왜 여기에있어··
아니 회사 출근하는날인데~
"할아버지"
소리지르면서 손자손녀가 꼭 껴안아주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래 여태까지 못온다고 그렇게 강요했던것도 숲길을 7시까지 맞췄던 것도 전주가족들이 도착을 안해서 그랬던거였다.
자기들끼리는 서로 연락하면서 철저하게 계획했단다.

생일이란· 나이 한살 더해진다는 중요한 의미도있지만 누군가에게 기억되고있다는 사실이 벅찬 감동을 주는날이다. 따뜻함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전해져서 마음이 뭉클했다. 작은 이벤트의 속임으로 설레도록 아름다운 가슴 뜀을, 우리부부에게 선물해주는 내 가족들이 진정으로 고마웠다. 손자들까지 철저하게 교육시켜서 성공 성공 한셈이다.

샤브샤브로 정갈하게 상차림이 되어있다. 내가 채소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곳을 선택했다는 그말이 왜 그렇게 고마운지~나는 평소에 너희들에게 잘해준 것도 없는데, 잘 살아준 것만으로도 난 더 이상 바랄게 없는데~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족이란·· 서로 바라만 봐도 믿고 서로 다독여주는 울타리 같은 것, 늘 곁에 있어서 그 소중함을 가끔 잊기도 하지만 그 가족이 있어서 흔들리다가도 결코 무너지지않는 힘을 다시 얻어내고, 삶의 가장 든든한 뿌리가 되어준다. 서로를 지탱해주고 부족함도 서툶도 다독여주는 그런 사이다.

케이크와 정성으로 준비한 선물들을 내게 안겨준다. 사위는 용돈까지 챙겨서 손에 쥐어주었다. 케익에 촛불을 밝히고 축하해주는 그 자리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기도했지만, 서운함보다 감사한 맘이 내 맘을 가득 채웠다. 서로 환한 미소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음을 터트린다.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다.

몸도 마음도 자신감까지도 점점 작아지는 부모의 어깨를 말없이 받쳐주는 너희들이 이제 어른으로 자랐구나. 곁에 있어주는것 만으로도 고맙지 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잔잔히 흘렀다. 나는 촛불이 꺼진 그 자리에서 그 시간이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영원하길 속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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