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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

시인·화가

한낮의 기온이 겉옷을 벗어야 할 만큼 상승 중이다. 날씨에서 오는 감정의 변화는 곧 돌아올 계절을 예감하기도 한다. 우리들의 마음과 몸에 뜨겁게 물들었던 봄은 이제 떠날 채비를 한다. 사실 우리가 살아온, 앞으로 살아갈 '생'도 그렇다. 인생의 절정기인 한창 잘나가는 좋은 때를 사람들은 봄날이라 부른다. 그런데, 사실 이런 날은 너무나도 짧다. 금년에도 봄은 소리 없이 왔다가 다시 온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백설희 선생의 유행가 가사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짙은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오늘도 무심히 봄날은 간다.
클릭하면 확대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영동 심천에서.

ⓒ 양선규
 벌떼 소리 함께했던 잉잉대던 봄, 천천히 지나고 남해 바다의 숨결로 달궈진 진한 소금꽃 향기 산 너머에서 불어오고 있다

 올봄에는 꽃 사태를 만났다 가도 가도 끝없는 꽃길, 눈으로만 보는 꽃 말고 가슴속에서 범람하는 꽃의 홍수다 우수, 경칩 지난 섬진강 변 소학정에서 청매화 만나 차 한 잔 나누고 화엄사 뜰 붉게 물들인 홍매화와 구층암 지나 들매화 핀 호젓한 길 걷기도 했다 사월에는 연화지에서 꽃비와 함께 독한 술 한 잔 나누고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불렀다 입하 무렵, 황매산성에서 짙은 철쭉꽃 물든 황홀한 일몰의 해를 타고 지리산 천왕봉을 넘었다

 또 하나의 봄이 나무의 속살, 무늬 결에 새겨지고 있다 봄의 물결, 썰물처럼 빠져나간 그 자리에 꽃 한 송이 화인처럼 찍혀있다

-2024년 5월호《한국산문》, 양선규 시,「봄날은 간다」 전문

어디 가는 게 봄뿐이겠는가, 해가 바뀌고 계절이 변할 때마다 몸의 변화가 천천히 감지된다. 생각할수록 좋은 날들이 짧게만 느껴지는 것은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봄과 한순간인 젊은 시절의 아쉬움 때문이리라

춘래이화백화지수엽청(春來梨花白夏至樹葉靑)이라했다. 봄이 오니 배꽃은 희게 피고, 여름에 이르니 나뭇잎은 푸르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이는 계절이 오고 감을 말하기도 하지만 천천히 변화하는 우리 삶의 순환을 의미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여름의 절기인 소만(小滿)을 앞두고 있다. 이때는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크게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로 여름의 시작점을 알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모내기 준비에 몸이 바빠지는 시기이며 밭작물의 김매기와 보리싹이 성장하여 짙은 녹색의 물결로 마음이 푸른 계절이다. 온 산야에 여름의 붉은 꽃이 피어 누이는 손톱에 붉은 봉숭아 물을 들이고 가을에 추수했던 곡식이 떨어져 먹을 양식이 귀해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야 하는 시절을 경험했던 절기이기도 하다.

해거름, 이른 모내기를 마친 논물에 산 그림자 하나 정좌하여 명상 중이다. 나도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숙이 그 그림자 따라 들어가 고요에 드는 저녁나절, 물이 되어 가는 중이다. 고개 들어 바라보는 곳마다 짙은 오월의 녹음이 펼쳐지고 있다. 봄은 가고 있지만 가는 곳마다 푸르름이 절로 좋은 계절이다. 오늘도 가는 곳, 머무는 곳마다 마음까지 푸르도록 모든 사람들이 오월의 숲과 함께 하시기를 두 손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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