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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충북여고 교장

마당에 잔디가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되어간다. 잔디를 가꾸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주말을 보내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날이 풀리고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잔디밭에도 풀들이 무성해진다. 씨앗을 가져다 뿌린 것도 아닌데, 어디서 날아오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오는 풀의 종류는 해마다 계절마다 변한다. 몇 년 전에 무성했던 녀석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엔 새로운 이름의 풀이 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올해는 개불알꽃이 주종이다. 지난해 몇 포기 난 것을 그냥 무시하듯 놓아두었더니 번성할 기회를 찾은 듯하다. 지천이다. 그 녀석만 따로 놓고 보자면 작은 보라색 꽃이 앙증맞게 이쁘다. 꽃 자체로만 따지면 얼마간 번성했다가 사그라든 제비꽃이나 민들레도 그렇다. 그렇지만 나의 목적은 잔디밭을 가꾸는 일이다. 제 영역을 차지하고 넓혀가는 모습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잔디의 공간이 사라지니 뽑지 않을 수 없다.

개불알꽃은 사실 순한 편이다. 이름도 낯선 세포아풀은 그악스러울 정도였다. 추위가 가시지 않아 다른 풀들은 미동도 하지 않거나 이제 막 싹을 틔우려 할 때 이 녀석은 벌써 색깔도 없는 무미건조한 꽃을 피우고 금세 열매까지 매단다. 싹을 올리고 씨앗을 맺기까지의 기간이 정말 짧다. 잔뿌리는 엉킨 그물처럼 널찍하게 늘어놓고,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번식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훌륭해 보일 정도다. 그래도 얌체 같은 모습에 인정이 가지 않는다.

미워하는 풀이 생긴 것도 시골살이의 결과다. 유난스럽게 제 자리를 차지하고 넓히려 하거나 엄청난 번식력으로 세력을 확장해 대는 녀석들이 주요 타깃이다. 환삼덩굴도 그중 하나다. 줄기를 잔가시로 둘러싸고 발 빠르게 다른 풀이며 나무들 위로 올라탄다. 공간을 온통 독차지하곤 햇볕을 거의 다 가로챈다. 눈에 띌 때마다 뽑아버려야 성이 풀린다. 덕분에 팔뚝에는 잔가시에 스친 상처가 생기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난 주말에도 풀을 뽑았다. 두세 시간씩 쪼그려 앉았기가 불편해 작은 방석까지 마련해 퍼질러 앉은 채 풀 뽑기를 했다. 문득 처음 이사 왔을 때 모습이 떠오르며 겹쳐진다. 뭔가 다르다. 그렇게 열중하다 보면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햇볕이 어떻든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은 같은데, 그럼에도 뭔가 달라진 게 있다. 느긋함이다. 풀이 듬성듬성한 곳이나 못자리 판처럼 무성한 곳이나 이제는 태도의 달라짐이 없다. 처음에는 자잘한 풀들이 잔뜩 모여 있어 뽑아도 뽑아도 표시가 나지 않는 곳에서는 신경질이 나기도 하고, 그래서는 안 되지만 약을 칠까 유혹을 받기도 하고, 중간에 그만둔 적도 많았는데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별 동요 없이 그냥 죽 풀 뽑기를 이어가고 있다.

뭘까. 변한 것이라곤 시간이 흘렀다는 것과 그동안 풀 뽑기에 나름 단련이 되었다는 것 정도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예순이 넘었다. 성급함이 가라앉을 나이다. 이십 년 가까이 쌓은 풀뽑기 내공일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잔디 마당은 잔디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게 마음에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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