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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성

수필가

앞산 우듬지에 초록 거품이 이는듯하다. 장미가 꽃봉오리를 무는 찬란한 오월이다. 자주색으로 잎을 피우던 정원의 '호장근'도 하루가 다르게 키를 올린다. 키다리는 단연 집 뒤뜰의 '위송威松'이다.

위송이 잘 자란다고 대견해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너무 높이 자라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가을이면 쏟아지는 솔잎이 지붕에 두텁게 쌓여 ㅤㅆㅓㄲ고, 땅을 덮은 마른 솔잎은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한다. 지금쯤이면 보랏빛 꽃을 피우던 앙증맞은 미국 제비꽃도 솔잎에 덮여 다 사라졌다. 그 뿐인가. 윗집으로 가는 전봇줄도 가지 속에 묻혀 바람이 세게 불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칭찬받던 나무가 위협이 되고 거추장스러워졌다.

사람도 칭찬 받다가 비난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성공한 사람을 축하하며 격려하다가도 어느 시점부터 질투하고, 시기하고, 침묵으로 무시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마도 침묵은 성장한 이들을 인정해주고 싶지 않아서일 테다. 인정해줌과 동시에 그가 이전의 위치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승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일까.

우리는 어울림 속에서 생활한다. 거의 모든 단체는 화목함과 공동의 이익을 바라지만, 반면에 단체 속의 한 개인이 앞서가는 성취를 했을 때는 키 높이를 맞추려는 충동도 존재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어나온 못은 때려야한다.'는 정서는 어찌 보면 긍정적 의미보다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성취를 노력의 결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어울림은 활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를 받게도 한다.

'큰다,' '크다.' 라는 의미를 생각한다. '키 큰 양귀비 증후군' 이 있다. 키 큰 양귀비는 더 높이 자라려는 끈질긴 의지로 자신을 성장시킨다. 집단 내에서 유난히 높이 솟아있다. 고만고만한 양귀비들이 그 꽃을 꺾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키를 맞추는 것이 정의이고 사회적 평등이라고 주장한다. 비슷한 키의 양귀비들은 돌출을 문제 삼아 비난, 조롱, 배제하기도 하고, '거만하다' '난체한다'며 인격적 모욕을 하기도 한다. 평등을 주장하는 양귀비들은 키 큰 양귀비에게 사회적 가위를 들이대며 키를 맞추는 일은 폭력이 아니라 화합을 위한 질서유지의 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사회 구성원 속에는'키 큰 양귀비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성취자는 때로 제거당하리라는 심리적 위협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다. 높이를 절단하려고만 한다면 더 높은 문화를 위한 도전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가 되어 버릴 것이다.

어울림의 미학은 서로 다름에 있다. 꽃도, 숲도 달라야 아름답다. 다름을 존중할 때 이해도, 성장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내게도 '위송'의 성장이 불편함으로 다가왔었다. 생각의 물꼬를 돌렸다. 키 큰 나무는 잘못이 없다. 솔잎을 떨어뜨려 지붕을 썩게 할 의도도 없었고, 전봇줄을 걸쳐 방해할 뜻도 없었다. 인간의 척도와 모진 심리가 '키 큰 양귀비 증후군'에 비겨 높은 키를 견제했을 뿐이다.

조경사가 긴 사다리를 나무에 기대며 전기톱을 들고 올라갔다. 전봇줄을 피해가며 지붕 높이 아래쪽 가지는 잘라내고, 그 위로는 품을 줄였다. 시원하다. 이제 키 큰 나무는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벗 삼아 마냥 커도 좋겠다.

오후 내내 울리던 전기톱의 윙윙대던 소리도 끝나고, 조경사는 잘려진 가지들을 트럭에 가득 싣고 돌아갔다. 숲에 둘러싸인 마을에 고요와 어둠이 함께 내린다. 잘 다듬어진 키 큰 나무는 위용을 뽐내며 우리 집을 지키고 있다.

키 큰 나무와 함께 앞산에서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를 듣는 평안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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