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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아픈 날들의 그리운 동행

  • 웹출고시간2026.05.07 16:52:57
  • 최종수정2026.05.07 16:52:57
초등학교 여자 동창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마음 한켠이 조용히 저려온다. 그녀의 삶은 어느 날 갑자기 방향이 바뀌었다. 남편이 사고로 뇌진탕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던 그 순간부터 그녀의 시간은 이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 병원에서 만났을 때 동창은 울지 않았다. 그저 남편의 손을 붙잡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고 앞으로의 삶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담담했다. 나중에야 그녀는 말했다. "울면 이 사람이 더 불안해할 것 같아서"

그날 이후로 동창의 시간은 하루 온전히 남편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남편의 몸을 닦아주고, 굳어버린 팔다리를 조심스럽게 주물러 주고, 식사를 떠먹이며 하루를 열었다. 남편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지만, 눈빛으로 모든 것을 전했다. 그녀는 그 눈빛을 읽어내는 데 점점 더 능숙해졌다.

십 육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계절은 수없이 바뀌었고 세상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녀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가끔 그녀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아?" 그럴 때마다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힘들지.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이잖아"

그녀의 말에는 어떤 결의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의무라기보다는 오래된 사랑과 연민이 만들어낸 단단한 책임감 같은 것.

남편이 세상을 떠난 날, 그녀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그녀는 끝까지 울음을 참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가고 나서야, 그녀는 남편의 영정 앞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 "이제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그 이후로도 한동안 그녀의 집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하지만 친구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조용해졌고 더 사색이 깊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는 남편이 생각나면 자주 산소에 가기 시작했다.

동창생 대여섯 명이 산소를 따라간 적이 있다. 언덕 위에 자리한 남편의 산소는 햇살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이었다. 그녀는 잡초를 정리하고 흙을 다듬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 왔어 당신.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같이 보려 친구들 데리고 왔어"

그녀는 마치 남편이 곁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해 보여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산소는 이별의 장소가 아니라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만남의 자리였다. 살아 있을 때처럼 그저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지금도 친구는 가끔 그곳에 간다. 바람이 부는 날에도, 햇살이 따뜻한 날에도 그리고 변함없이 말을 건넨다. 대답은 들리지 않지만 그녀는 안다. 그 침묵 속에 여전히 함께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남편과 그녀에게는 제약회사에 다니는 삼십대 중반의 슬하에 아들이 있다.

아들은 뜻하지 않게 장애를 입은 아버지를 위해 오랜 세월 헌신적으로 병간호를 해온 어머니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며 늘 안타까운 연민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런 아들이 오랫동안 만나온 마음씨 곱고 아름다운 규수와 오는 6월 부부의 연을 맺는다고 한다.

예비 부부는 오랜 병간호로 심신이 지친 어머니께서 남은 생애를 편안하고 안락하게 보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중형 신차를 마련해 드렸다고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효행을 실천하는 젊은 부부가 또 있을까.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나는 그녀가 남편을 잃고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어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떠나도, 그 마음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그녀의 뒷모습은 더 이상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빛이 그녀에게는 있다.

진경수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 졸업

청주시의회 전문위원 역임

충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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