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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회장

영월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된 한국수필가협회 행사에 참석했다. 문학상 시상식에 앞서 진행된 심포지엄 주제 발표가 깊고 넓었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종환 시인이 <단종 복위를 위해 세우려던 나라 그리고 시>라는 주제로 첫 시간을 열었다. 문학 마당에 펼쳐진 비극적인 역사가 절절하고 선연하게 다가왔다. 비정하고 난폭한 권력에 맞서 죽음을 불사했던 관료들의 비통한 심정이 삼 행의 짧은 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문신 김종서와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을 비롯하여 김시습, 왕방연의 시조가 가슴을 때린다. 단종에게 내려진 사약을 운반해야 했던 금부도사 왕방연의 한탄이 단장의 메아리다. 직책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애끓는 절규이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전수림 수필가는 기록되지 않은 시간 속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는 단종에게 따라다니던 '비운의 왕'이라는 수식어를 걷어내며, 시대의 비극을 뛰어넘기를 권했다. 슬픈 운명을 타고난 어린 왕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던 단종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듯하다. 그가 보여주는 단종은 여리고 나약한 소년이 아닌, 할아버지 세종의 깊은 사랑 속에서 자란 영특하고 의연한 왕이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보았던 품위 있고 사려 깊은 단종의 모습이 겹쳐졌다.

'상상은 왜곡이 아니라 해석의 또 다른 통로'라는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의 상상력은 고립된 공간에 갇혀있던 단종을 미래를 밝히는 등불로 환치시켰다.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한 결말에 그치지 않고, 기억과 공감, 화해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축제의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제시했다. 의미 있는 제안에 공감하며 오래전 여행지에서 마주했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딸과 함께 스페인을 여행하던 때였다. 피카소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다가 축제를 즐기는 인파에 합류하게 되었다. 거대한 인형들과 어우러진 사람들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었다. 'La Merce'라는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축제 중 하나로,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 자비의 성모('Mare de Deu de la Merce)를 기리는 행사이다. 큰 머리 인형을 앞세우고 행진하는 퍼포먼스인데, 중세 성체축일(Corpus Christi) 행렬에서 유래한 전통이다. 성경 속 인물, 왕과 왕비, 기사, 지역 영웅 등을 거대한 형상으로 만들어 행렬에 세웠던 행사가 카탈루냐 지역 민속문화로 발전했다고 한다. 곳곳에 자리한 가우디의 예술적인 건축물과 더불어 충만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역사는 해석과 관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현재의 시간 위에 있는 우리가 할 일은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비극적인 역사의 궤적을 균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더 나은 내일을 함께 그려가는 일이다.

귀갓길에 바라보는 영월 봄 풍경이 새롭다. 오래전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와는 또 다른 감흥이다. 여행 내내 따라다니던 애상의 무게가 가벼워진 듯하다. 영월은 이제 애상과 추모의 공간을 넘어, 단종이 백성들과 함께 머물렀던 곳, 죽음으로써 왕의 정체성을 영원히 확립한 땅으로 기억되리라.

<약력>

무심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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