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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5.05 16:21:48
  • 최종수정2026.05.05 19:04:37

박영순

'파란만장한 커피사' 저자

에티오피아산 '아바야 게이샤(Abaya Geisha)' 또는 '아바야 게샤(Abaya Gesha)'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커피를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4~5년 전 해당 커피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일부 전문가들은 그 명칭의 불투명성에 대해 강력한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시장은 이를 희귀한 '게이샤'로 덥석 수용했고, 수입업자들은 화려한 스토리텔링과 브랜드 전략을 덧입혀 상업적 가치를 극대화해 왔다. 하지만 최근 정보의 불일치와 추적 불가능성이 드러나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논점은 '명명 체계의 왜곡'이다. 커피에서 이름이란 상품을 구별하는 라벨에 그치지 않는다. 산지와 품종, 가공 방식이라는 핵심 정보를 전달하는 기호 체계이자, 산업 전반을 지탱하는 언어적 규범이다. 이 언어는 생산자부터 유통사, 소비자를 하나로 잇는 신뢰의 사슬이어야 한다. 그러나 수입신고필증에서 확인되는 '겔라나 아바야 게샤(GELANA ABAYA GESHA)'라는 표기는 이 견고한 체계를 정면으로 교란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모순은 더욱 선명해진다. 겔라나는 행정구역상 오로미아 주 구지(Guji) 존에 속하는 행정 단위다. 반면 아바야는 인근의 광범위한 호수 유역을 지칭하는 지리적 범주다. 서로 다른 위계의 지명이 비체계적으로 병렬된 상태에서 '게이샤'라는 품종명이 결합됐다. 이는 소비자의 환상을 자극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기호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수입 물량의 규모를 보면 의구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게이샤 품종은 특정 고도와 미세기후 조건 아래서 발현되는 이채로운 향미로 인해 희소성과 개별성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한 번에 19톤에 달하는 대규모 로트가 단일 품종으로 수입되었다는 사실은 게이샤의 전형적인 생산 프로필과 양립하기 어렵다. 이는 집하 중심의 대량 유통 구조에서 발생한 생두에 상업적 프리미엄을 위해 '게이샤'라는 이름을 무분별하게 부여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명칭이 더 이상 실제를 지시하지 못하는 '기표의 과잉'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기만의 피해는 비단 소비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당 명칭을 신뢰하고 고가에 원두를 매입해 판매해온 수많은 작은 카페들 역시 잠재적인 피해자이자, 동시에 의도치 않게 기만에 가담하게 된 처지에 놓여 있다. 만약 가격을 더 높게 받기 위해 일반 소비자들은 확인하기 힘든 용어를 동원해 진실인양 가장했다면 이는 시장 질서와 공정 거래의 대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업계의 자율적인 정화 능력에만 기대를 걸 수 없을 것 같다. '아바야 게이샤'라는 이름이 생성되고 유통된 구체적인 경로, 수입업자와 에티오피아 수출업자 간의 계약 구조, 그리고 마케팅 과정에서의 정보 왜곡 여부에 대해 냉철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표시·광고의 적정성과 원산지 및 품종 표기의 정확성은 명백히 법적 판단의 대상이며, 필요하다면 관계 당국의 엄중한 조사와 수사가 병행되어야 한다.

스페셜티 커피 산업은 오직 '이름에 대한 신뢰'를 먹고 자란다. 이 신뢰가 붕괴되는 순간, K-커피 문화를 드높이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품질 평가 체계와 윤리적 소비 노력, 나아가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절실한 것은 '관행이라는 이름의 방조'가 아니라 과학적 검증과 제도적 통제를 통한 시장의 재구성이다. '게이샤'라는 이름이 지시하는 실체는 반드시 언제 어디서나 검증 가능해야 한다.

이름이 과잉될수록, 실체는 침묵한다. '게이샤'라는 화려한 기표 뒤에서 무엇이 지워지고 있는지 묻고 따져야 한다. 이름은 단지 사물을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인 까닭이다. '게이샤'라는 이름이 더 이상 실체를 가리키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커피 뿐 아니라 그 언어까지 잃게 된다.

/박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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