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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5.05 16:24:49
  • 최종수정2026.05.05 16:24:49

박영록

한국교통대 중국어전공교수

1987년에 전국적인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우리나라는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고, 그해 12월, 마침내 16년 만에 직선제 선거가 이루어졌다. 물론 대통령직선제는 '운동권'의 궁극적 목적도 아니고, 심지어 여당 후보가 당선돼 버렸으니 실제 결과는 운동권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7년 항쟁 당시 주류의 명분이 '직선제'였고, 그것이 실현되었으므로 기존과 같이 '군부독재타도'라는 구호는 외치기 어렵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이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라고 선언하며,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제적된 학생들의 복학을 허용하였다. 여러 이유로 복학을 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었으나, 이때 제적생들이 대거 대학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우리 동아리에 있던 한 여자 후배는 틀림없이 90년에 졸업을 했어야 하는데 몇 년 뒤에 봐도 여전히 학생이었다. 한번은 "너는 도대체 몇 학년에 복학했길래 졸업을 안 하냐·"라고 물어보니, 그 후배 왈 "선배, 나 학력고사 봐서 학교 새로 다니는 겁니다." 그 후배의 사정은 이러했다. 1990년에 대학 졸업을 했는데, 졸업식날 가족 모임 자리에서 후배의 부친은 대학 중퇴자가 될 줄 알았던 딸이 졸업을 하게 된 것에 감격해서,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선에서 다 해 줄테니, 소원 하나 말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막 졸업식장에서 나온 후배가 한 말이 "아빠, 저 대학 다시 가고 싶어요. 저는 수학을 전공하고 싶었다고요."라 했다는 것이었다. 상황을 들어보면 그의 부친은 굉장히 가부장적인 분이었던 것 같은데, 이미 약속했기 때문인지, 딸의 진심에 느낀 바가 있었던 것인지, 그날의 졸업식 파티는 재수(햇수로는 7수가 되지만) 응원회가 되어버렸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후 수학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바라던 대로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생각하면, 먼 길을 돌아와 얻은 성취이니 더욱 소중하기도 했겠지만, 자신의 적성이 아닌 곳에서 보낸 시간이 아까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학의 전공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이것은 당연히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는 대학의 서열도 존재하고, 졸업 뒤 미래 전망도 중요하다. 다만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학생의 적성이 여러 고려 요소들 중에서 뒤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어디에 보내두어도 적응하고 최선을 다하는 성격인 경우도 있겠고, 또는 자신이 장래에 하고자 하는 일이 대학에 딱히 맞는 전공이 없어 그냥 졸업장만 받아두겠다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다. 사실 지금의 부모들도 자신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는 적성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겠지만, 자녀의 전공을 선택할 때는 대체로 '현실' 쪽에 좀 더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모든 공부란 힘든 법인데, 그것이 힘들고 귀찮아서 내팽겨치게 되느냐, 도전해서 이뤄내며 힘든 과정을 기꺼이 즐기느냐 하는 것은 모두 적성과 소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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