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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옥

음성문인협회 회원

엊저녁부터 준비했다. 둥그런 메주를 솔로 씻어 함지박에 앉혀놓고 손으로 뚝뚝 쪼개놓은 다음 생수를 부어 놓았다. 쉬울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할 일이 많다. 아침부터 엿기름을 걸러 큰솥에 담아 끓인 후, 압력솥에는 보리쌀을 안쳤다. 제일 어려운 건 소금 농도를 맞추는 일이다.

오늘은 친정엄마가 생전에 해준 것처럼 막장을 담아보기로 했다. 옛날에는 손 없는 날이나 말날을 택했지만 나는 그냥 볕 좋은 날로 택했다. 거실에 자리를 깔고 메주가 담긴 함지박을 들고 왔다. 미리 생수를 부어놨다지만 그다지 풀어진 게 없다. 푹 삶은 콩알이 메주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을 이겨냈든가. 겨우내 볏짚에 매달려서는 나무토막처럼 단단히 말려지고 곰팡이 꽃까지 피었으니, 자존감 강한 메줏덩이가 쉬 풀어질 리 만무다. 단단한 돌멩이 덩이를 곱게 부수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 하나하나 누르거나 비벼대도 손가락만 아플 뿐 일이 줄지를 않는다. 급기야 메주 치대기가 벅차 내 풀에 지쳤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까지 솟는다. 엄마가 해준 막장이 그리워 시작한 일이지만 쉽지 않다. 예전에 엄마도 이만큼 힘이 드셨을까. 엄마는 뭐든 아주 쉽고 빠르게 뚝딱 만들어 놓으셨던 것 같다.

다시 함지박 앞으로 바짝 다가간다. 푹푹 달여 놓은 엿기름물과 보리밥을 넣고 고추씨 빻은 것도 쏟아 부었다. 양손으로 한참을 저어가며 치대주었더니 발그스름하니 예쁘고 맛깔스러운 색으로 변신했다. 마지막으로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항아리에 담았다. 항아리를 닦다 보니 엄마가 병원 신세를 졌던 그때가 가슴 아리게 떠오른다.

오십 대 중반 무렵이다.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광경을 마침 지나던 남여가 목격했다. 그들은 119에 신고를 한 후 엄마를 구급차가 올 때까지 주물렀다고 했다. 엄마는 몇 번에 걸쳐 큰 수술을 하셨다. 사고 당시 화상까지 입어 매일 같이 피부를 긁어내고 대량의 소독약을 들이붓다시피 했다. 재활치료 중 고통으로 사셨다. 치료 중 의사는 엄마가 행운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신고자가 구급대원의 간호사였기에 조치를 잘해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신경 쓰다 보니 그 고마운 은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못 했다.

병실에서, 하루는 엄마가 막장을 먹고 싶다고 하셨다. 언니와 나는 엄마의 솜씨를 떠올리며 메주를 사서 만들었다. 숙성된 막장을 끓여 병원으로 가져갔다. 밥 한 그릇을 막장에 뚝딱 드신 엄마는 기운이 솟는다고 하셨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친정집은 봄만 되면 특별한 막장을 만들었다. 또한 장을 담기 전 메주를 반으로 자르면 가운데는 물렁하다. 그 부분을 숟가락으로 파낸 후 뚝배기에 넣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이면 고깃국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어느 날은 냉이를 넣기도 달래도 넣어 끓여 주었는데 가끔은 잘게 썬 묵은 김치를 넣어 끓여주기도 했다. 가족에게는 최고의 남부럽지 않은 밥상이었다.

엄마는 자식들 줄 생각에 마냥 좋아하셨다. 이제 우리 집 막장이 숙성되면 엄마가 생전에 이웃과 자식들에게 나눠준 것처럼, 나도 이웃에게 맛을 보여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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