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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4.23 12:50:16
  • 최종수정2026.04.23 12: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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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 화가 황재형.

ⓒ 연합뉴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림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근한 아랫목을 만들었던

저 연탄재를 누가 발로 함부로 찰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 있는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이다. 따뜻함을 나눠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태워버리는 연탄을 발로 차버리는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다. 이동우 미술관에는 지인이 선물한 이 시가 액자에 담겨져 한 벽면을 지키고 있다.

이 시를 볼 때마다 연탄의 고마움과 깊은 땅속으로 목숨 걸고 들어가 연탄을 캐는 광부들이 떠오른다. 또한 그러한 광부들을 평생 그려서 '광부 화가'라고 불리는 황재형(1952-2026)이라는 작가도 생각난다.

황재형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전업 작가의 길을 가지 않고, 직접 막장에서 광부로 일하며 폐광촌의 풍경과 탄광 노동자들의 힘든 삶을 자화상 그리듯 캔버스에 담았다.

그는 광부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광부로 퇴직한 어르신을 요양원에서 만나보니 애절한 눈빛이 절절했다. 그 어르신은 자녀와 가족을 위해 막장에서 희생했다.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말년을 지내는 모습은 눈에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서리고 코 아래 인중에는 막장에서 생긴 흉터 자극이 눌러앉아 있었다."고 회상하며 그 광부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화폭에 담아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자리'라는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우리 모두의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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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의 '식사 Ⅱ'.

ⓒ 연합뉴스
황재형의 예술 세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견고해진다. 202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회천(回天)'을 통해 한국 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다. 머리카락과 흑연 등 독창적인 재료를 활용해 노동과 현실의 무게를 캔버스에 표현했다.

그는 전시회 도록에서 "한 인간의 머리에 자라나는 십만 개의 머리카락이 한날한시에 태어나는 경우가 없고, 동시에 죽어가는 법 없이 독립돼 제 기능을 다 한다. 내게 머리카락이 귀중한 것은 개개인의 삶이 기록되는 필름과 같기 때문이다. 나의 그림은 내가 아니라 우리가 익명의 개인에게 보내는 뜨거운 연서(戀書)이다. 폐광촌 사람들의 머리카락으로 우리들의 삶의 표정을 표현하는 기회를 만들자. 좀 더 진지하고 리얼하게 머리카락을 통해 탄광촌 사람들의 표정을 전달해보자는 생각으로 머리카락 그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피력(披瀝)하고 있다.

그의 머리카락으로 그려진 작품들을 보면 화폭에서 춤을 추는 머리카락은 강렬한 눈빛으로 승화되거나, 행복한 모습의 광부와 가족들 나들이 표정에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머리카락 그림에 쓰인 재료는 모두 태백지역 미용실에서 수거한 것들로, 정성스럽게 모은 머리카락이 화폭에 옮겨진 것이다. 탄광촌의 사람들을 소재로 하는 그림에는 탄광촌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세계 최초로 머리카락을 이용한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황재형은 현실을 형상화하기 위해 머리카락 외에 삶의 흔적이 진하게 스며있는 일상생활 속 물건, 폐품 등을 수집해 오브제로 사용했다. 필자가 버려지는 캔, 잡지 등을 이용해 작업하는 것과 비슷한 작업 스타일이다.

그의 작품들 중에 특별히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다. 안동에서 오래된 '이응태의 묘'를 이장하면서 '원이 아버지 전상서'라는 그의 처(妻)가 쓴 편지가 발견된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남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이 편지의 내용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삼과 머리카락을 이용해 삼은 짚신이 그대로 발굴돼 화제가 된다. 이응태의 처(妻)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을 섞어서 삼은 미투리를 같이 묻어준 것이다. 이 짚신을 신고 저승길 잘 가라는 깊은 뜻이었다. 황재형은 이 애틋한 사랑의 징표를 보면서, 그것을 다시 머리카락으로 재연해 작품으로 완성시킨다.

얼마 전 2026년 2월 27일 새벽 '광부 화가' 황재형이 암 투병을 하다, 이 세상 소풍을 마쳤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다. 가나 아트 갤러리에서는 황재형은 시대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치열한 눈으로 현실을 응시한 화가이며 인간 존재와 자연에 대한 경의를 잃지 않은 채, 한 사람의 삶이 곧 한 시대의 초상이 될 수 있음을 평생에 걸쳐 증명해 보였다며 그를 추모했다.

황재형은 막장에서 언제 사고로 죽을지도 모르는 광부들의 힘든 삶, 가난한 탄광 마을과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 등 고단한 사람들의 삶을 평생 표현했다. 손은 두툼하고 투박하지만, 가슴은 한없이 포근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 나이 들수록 요령만 늘어 안일하게 작업하고 있는 필자에게 연탄처럼 자신을 열정적으로 살다간 황재형은 많은 것을 반성케 하는 작가이다.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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