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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전)청주시평생학습관장

나이가 들수록 형제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오빠를 보내고, 엄마를 모시고 있는 동생에게도 아픔이 찾아왔다.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기를 바라며, 엄마를 모시고 동생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봄 햇살에 이끌려 기지개를 켠다. 평생 새벽밥을 하던 습관 때문인지, 엄마는 일찍 일어나 분주히 움직이고 계셨다. 다리를 걷어 올린 모습을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 그동안 엄마 얼굴만 보고 돌아섰던 나를 떠올리며, 엄마의 다리에 한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그래도 혼자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며, 가슴에 묻은 자식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봄바람에 흔들린다.

동생의 아침 루틴 중 하나가 미동산수목원을 한 바퀴 걷는 거라며 동행할 것을 권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수목원은 이른 아침인데도 분주하다. 입구부터 다가오는 나무 향이 은은하게 스며든다. 오랜 세월 그곳에서 사람들의 쉼터가 된 여러 겹의 나이테를 두른 나무를 바라본다. 나무껍질은 가뭄에 마른 논바닥처럼 깊게 갈라져 있었다.

바람과 더위, 추위를 버텨온 모습을 마주하니 아침에 바라본 엄마의 다리가 눈앞을 가린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뎌오셨을까.

엄마와 함께 산에 올라 땔감을 주워오던 모습부터 씀바귀와 냉이를 캐던 모습, 도라지 껍질을 벗기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젊은 시절 힘찬 다리로 자식들을 키우느라 이리저리 분주하게 살아오셨는데, 이제는 힘이 빠져 부드럽게 내려앉은 다리로 한 걸음씩 옮기고 계신다.

이제 제법 땅을 뚫고 올라온 병아리 입 모양의 새싹들이 입가에 살포시 웃음을 얹는다. 엄동설한 대지에서 움트는 생명이 봄볕으로 물들어 곳곳에서 자연의 화음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봉긋한 꽃망울과 연둣빛 새싹, 한껏 물이 오른 나뭇가지들이 조화롭게 피어나고 있다. 나무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으며 평화로이 듣는 봄의 교향곡은, 나무껍질로 눈길이 닿는 순간 다른 결로 깊어진다. 아침에 본 엄마의 다리가 겹쳐진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는 엄마는 먼 산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옆에 서 있었다. 괜히 말을 건네면 그 고요가 흩어질 것만 같았다.

엄마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그 너머에,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들이 함께 고여 있는 듯했다. 그 시간은 나무껍질의 결처럼 켜켜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곁에 서서,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따라가 보려는 듯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다가가 엄마의 얼굴과 손을 살포시 감싸며 나란히 앉았다.

앞에 서 있는 나무껍질의 갈라진 결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침에 본 엄마의 다리가 다시 떠올랐다. 엄마의 다리는 거칠게 말라간 흔적이 아니라 오래 살아낸 세월이 그 안에 겹겹이 남아 있었다.

저 나무가 사람들에게 쉼을 내어주듯, 엄마의 다리도 시간을 견뎌낸 자리였다. 나는 엄마 곁에 앉아, 그 시간을 조용히 느끼고 있었다. 말없이 고인 그 시간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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