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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4.14 15:56:44
  • 최종수정2026.04.14 15:56:44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전쟁을 비판하고 나섰다. 국제법적 문제보다 중요한 것이 민간인의 안녕이라며 트럼프에게 반기를 든 교황은 올 하반기 미국 방문 계획을 취소하고 건국 기념 250주년 행사에 초청하겠다는 백악관의 제안까지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인은 폭탄을 던지는 자들의 편에 절대 서지 않는다는 교황의 공개적 질책에 심기가 몹시 불편해진 트럼프 정부의 대응이 가관이다.

트럼프 정부는 주미 교황청 대사인 크리스토프 피에르 추기경을 즉각 국방부로 불러 들였다. 몹시 격앙된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교회가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석한 관계자의 전언에 의하면 '아비뇽 유수'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이쯤이면 경고를 넘는 겁박이다.

14세기 프랑스 왕정이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공격하여 교황청을 로마에서 프랑스 아비뇽으로 약 70년 간 강제 이전시킨 사건이 아비뇽 유수다. 아비뇽 교황권이라고도 부른다.

아비뇽 유수의 '유수(幽囚)'는 잡아서 가둔다는 뜻이다. 교황이 프랑스 국왕에 의해 유폐되었음을 유수로 표현했는데, 구약 시대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대 왕국이 사라지고 유대인들이 수도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바빌론 유수'에서 비롯됐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와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대립은 성직자 과세문제로 발생했다. 민중의 교감을 얻은 필리프 4세가 성직자 과세를 실시하려하자 이를 괘씸하게 여긴 교황은 교황의 영적 권위가 국왕의 현세적 권위보다 우위임을 주장하며 필리프 4세를 파문하고 프랑스 왕국 전역에 성무금지령을 내리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발끈한 필리프 4세는 공의회에서 교황의 이단혐의를 심의토록 제안하고, 교황이 저지른 범죄혐의를 명시한 기소장을 작성하라 지시했다. 기소장의 혐의 내용은 총 4가지다.

첫 번째 혐의는 간통죄다. 교회는 교황의 신부인데, 전임 교황이 살아있을 때 불법으로 교황 자리를 찬탈했으니 간통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 혐의로는 교황의 방에 짐승들과 마귀를 불러들여 수간 및 마귀와 교접한 음란죄를 들었다.

다음은 교회재물 착복혐의로 교황이 사치를 일삼으며 대놓고 성직매매를 했음을 지적했다. 마지막 혐의는 살인죄다. 보니파시오 8세가 정적인 콜론나 가문을 반역죄로 몰아 콜론나 일족의 씨를 말려 버리고 심지어 콜론나 가문 영지에서 일하던 농노까지 학살했던 죄를 물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혐의는 억지스런 면이 있지만 세 번째와 네 번째 죄는 기소되기 충분한 흠결이긴 했다.

1303년 9월 7일, 간신히 살아남은 콜론나 가문의 피붙이로 교황에게 멸문의 변을 당했던 '시욘나 콜론나'는 군사를 이끌고 이탈리아 아나니 별장에 있던 보니파시오 8세를 끌어내 당장 사임할 것을 요구했다.

"차라리 죽이라"며 교황이 항거하자 시욘나 콜론나는 끼고 있었던 장갑을 벗어 보니파시오 8세의 뺨을 후려쳤는데, 아나니의 뺨 때리기는 14세기 교황권 쇠퇴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프랑스 군사에게 구타당하고 감금됐던 교황은 사흘 만에 구출됐지만 사건의 충격으로 얻은 화병으로 인해 한 달 뒤 서거했다.

하필이면 교황이 프랑스 국왕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던 중세 아비뇽유수 사건을 교황청 대사에게 언급한 트럼프 정부의 발언수위가 아슬아슬하다. 험한 꼴 당하지 않으려면 잠자코 있으란 협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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