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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애

수필가

현관 앞에는 늘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들이 놓여있다. 연장을 포함, 대출 기간을 꽉 채운 도서들이라 반납하는 걸 잊지 않으려 미리 준비해 두기 위해서다. 누가 보면 굉장한 독서광인 줄 알겠지만 그 꾸러미 안에는 표지도 못 열어보고 반납하는 책들도 종종 끼어 있다. 대개 한주에 사오일은 도서관을 방문하므로 읽을 수 있는 책만 대출하면 되는데 항상 넘치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그 책을 간절하게 찾을 수도 있는데 참으로 못된 습관이다.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날은 슬그머니 자동반납기에 책을 넣는다.

일상의 절반 이상을 도서관에서 보내는 나는 고전들과 새로운 신간들이 섞여 있는 서가를 느리게 걷고 있으면 가슴이 설레곤 한다. 분류에 따라 정리해 놓았을 뿐인데도 다채로이 어우러진 책등의 무늬와 색상들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자유로운 곡선을 그린다. 그 흐름을 따라 눈길을 옮기다 보면 고정되어 있는 책들 속에서 오히려 생동감을 느낀다. 그러다 낯설거나 흥미로운 제목을 만나면 내용을 상상하며 꺼내보는데, 짐작과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을 때면 편집자의 의도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안과 밖이 다른 사람을 만난 듯 의심을 품기도 한다. 다양한 영역들의 지식과 상상들이 각각의 개성을 지닌 문체와 이야기로 말을 거는 도서관은 보르헤스 말처럼 무한한 우주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시간에 대한 흔적과 현재의 가치들이 뒤엉켜 존재하는 도서관은 책들의 유배지 같기도 하고 때론 무덤 같기도 하다. 많은 독자에게 불려 나가 새롭게 해석되고 그들의 삶에 각각의 새로운 무늬로 재창조되는 책들은 고전으로 불멸의 존재가 되지만 잊힌 책들은 먼지와 더불어 어둠 속에서 긴 잠을 자다 흔적도 없이 폐지로 사라지리니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갑자기 책이 온기가 흐르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 중 어떤 책들은 화려하게 단체로 외출하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낸시펄'이 미국의 시애틀 공공도서관에서 처음 시작한 이래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한 도시 한 책 읽기' 독서 운동이 펼쳐질 때다. 선정된 도서는 물론 관련 도서들이 손에서 손으로 쉴 새 없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우리 지역에서는 '책 읽는 청주' 독서 운동이 올해로 스무 해 이어오고 있다. 선정된 책들과 시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도서관은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기획하여 진행한다. 물론 책 한 권 함께 읽는다고 커다란 변화와 효과를 기대할 수 없지만 책에 한 발 다가가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이를 계기로 도서관에서 잠자던 책들이 시민들의 삶으로 스미어 다양한 무늬로 건강하게 재생산되기를 꿈꿔본다. 이번 주는 도서관의 날과 도서관 주간 행사들도 전국에서 열리니 모처럼 서가가 분주해지리라.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 서가의 고요한 산책은 한동안 멈추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읽지 않은 책을 두 권이나 반납했다. 그리고 또 꿈틀대는 욕망을 어찌하지 못하고 읽어야 할 책들에 읽지 못하게 될 확률이 높은 책을 두 권 더 추가하여 대출하고는 흐뭇해 한다. 눈처럼 쌓인 벚꽃들이 후르르 날리는 도서관 정원에 발그레 분홍 앵초가 귀여운 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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