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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어떤 대상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대상은 자신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된다. 가치를 획득한다는 것은 단순히 '알았다'는 지적 행위가 아니라, 그 대상을 통해 자신이 새롭게 드러나는 사건이다. 사랑은 앎 이전에, 그리고 앎을 넘어서는 만남을 전제로 한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그를 '가치 있는 존재'로 먼저 인식해서가 아니라, 그와 만남 속에서 내 안에 있던 빈자리가 그를 향해 조용히 열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받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고 근원적인 열망은 사랑하는 것 자체에 있다. 좋아하기 전에 주어지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관심이라는 조용하고도 따뜻한 시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심은 사랑의 가장 낮은 형태이자, 동시에 가장 순수한 씨앗이다. 관심이 없으면 대상은 우리 의식 속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지각과 정보가 스치며 지나가듯, 관심 없는 대상은 그저 흘러가는 배경일 뿐이다. 그러나 관심이 스며들면, 그 대상은 우리 안에서 생각이 되고, 기억이 되고, 가슴을 울리는 신호가 된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보자. 작은 화면 속 친구 목록에서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사소하지만 따스한 궁금증이 피어오른다. 이 관심이 신호를 보내고, 상대가 그 신호를 포착하면 우리는 서로를 향한 발신과 수신이라는 아름다운 고리를 만든다. 만약 그 신호가 사랑의 코드로 해석된다면, 우리는 존재 신비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잡음이 사라지고, 둘 사이에 '하나 됨'이라는 고요하고도 강렬한 순간이 찾아온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만남'에서 비롯된다. 우리 삶에서 관계는 때로 '나'보다 '너'가 먼저일 수 있다.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타자와 진정한 만남이 시작될 때, 비로소 의미가 부여되고 가치가 살아난다. 사랑은 존재론적으로 우선성을 가진다. 가치를 부여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 자체가, 이미 사랑에 대한 문을 여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한용운과 서여연화 만남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한용운은 서여연화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서여연화는 설악산과 건봉사에 잘 알려진 아름다운 보살이자 수계신도였다. 선주였던 남편이 요절한 뒤, 부유하고 젊은 미망인으로 남은 그녀는 해제일을 기해 남편 영가를 위로하는 큰 법회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 한용운을 만났다. 그 만남은 한용운에게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의 불씨가 되었다. 후일 그는 「님의 침묵」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 「님의 침묵」

새벽에 봄비가 내렸다. 비가 내린 뒤, 우리는 더 선명하게 떠 있는 별을 바라보게 된다. 첫사랑처럼, 또는 한용운이 서여연화를 통해 만난 그 사랑처럼. 관심에서 시작된 작은 신호가, 결국 존재 전체를 밝히는 빛이 될 수 있다. 사랑은 어렵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때로는 더 멀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가서면 멀어지는 신비 속에서 우리는 만남이라는 기적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우리'가 된다.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발견하여 관심을 갖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초롱하게 떠 있는 별을 찾아보고, 그 별을 사랑해 보자. 첫사랑처럼, 가슴 깊이 스며드는 그 따스한 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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