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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성

수필가

새싹들이 기지개를 켠다. 지난 가을에 화단에 묻은 튜립 구근들도 뾰족하게 잎을 올리고 있다. 텃밭에 채소모종을 심을 때라고 깃발을 든 듯하다.

말랑해진 밭고랑을 일구며 흙냄새를 맡는다. 비 오는 날처럼 비릿하기도 하고 신선한 갯내 같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냄새는 토양이 살아있다는 신호다. 흙을 다독이는 손끝에 닿은 지렁이조차 놀란 듯 흙속으로 몸을 숨기는 봄날이다.

서랍 속에서 씨앗 봉지들도 꺼내고 거실에서 겨울 한철을 보낸 누런 호박도 잘랐다. 호박 속의 씨앗들은 벌써 싹을 틔우며 꺼내달라고 안달이다. 모든 씨앗들은 때가 되면 조용히 땅에 묻히기를 소망 할 테다. 생물의 터전인 흙으로 회귀하려는 씨앗은 희생인가. 겸손인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오래된 미래』에서 라다크 사람들은 파종기가 되면 땅과 물의 영혼을 달래는 기도를 한다고 했다.

하나의 씨앗에서 백개의 곡식이 피어나게 하소서

두 개의 씨앗에서 천개의 곡식이 피어나게 하소서

부드러운 흙살을 헤치고 상추, 쑥갓 모종을 심으며 '쌈 채소를 이웃과 넉넉히 나눌 수 있게 하소서.' 라고 라다크 사람들처럼 기도해 본다.

우리는 어느 때 보다 윤택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삶의 평균연령이 늘어날수록 건강하며 오래살기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동물복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동물권을 중요시하는 것 뿐 아니라 인류의 건강을 위해 식용으로 소비되는 좋은 동물먹거리를 생산하기위한 것도 포함된 것 일게다.

그보다 식물복지는 살아있는 생명의 존엄을 강조한다. 다양한 식물은 인간과 동물의 생존에 필요한 필수 생명체라서 그 존엄성이 강조 되고 있다. 식물과 인간의 교감이 정서적 안정과 치유에 도움을 준다는 반려식물 기르기가 권장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물에게는 오염되지 않은 흙과 빛, 물의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보살핌도 필요하다. 식물학자들은 그들에게도 자유의지가 있으며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며 자란다고 한다. 관심을 갖고 관찰하다보면 그들도 고등생명체로서 존중받아야 함을 알 수 있다.

만화방창萬化方暢, 좋은 날이다. 꽃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고 청춘이고 희망이다. 꽃자랑 하던 내게 텃밭농사에 대해 늘 친환경 농법을 강조하시던 분이 물었다.

"마늘꽃을 아십니까·"

가을에 쪽마늘 씨앗을 심고 짚으로 덮어놓았던 마늘밭에 요즘 한 뼘씩 잎을 피워 올린걸 보지만 마늘꽃이 핀 걸 본 기억이 없다. 무심코 찔레 순을 따 먹듯이 마늘종을 사다가 장아찌를 담그면서도 그게 한 대궁뿐인 마늘꽃대인줄 생각하지 않았다.

그분은 마늘종(꽃대)을 뽑지 말란다. 꽃은 청춘인데 인간의 욕심으로 꽃대를 잡아 뽑으면 마늘어미는 살점을 떼인 듯, 생니를 뽑힌 듯 아프고 뿌리조차 흔들리는 고통을 느낄 거라고 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걸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안타깝다고 한다.

꽃대 뽑힌 마늘어미는 위기의식에서 필사적으로 아기들을 키운 후 날씨가 더워지면 온 몸의 물기를 말리고 죽는다. 그분은 '마음의 상처가 깊은 마늘을 먹어봐야 몸에 얼마나 좋겠나.' 라며 식물도 창조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꽃잔치에 덩달아 옷자락 날리며 돌아보지만 마늘어미의 고통을 짐작하니 새삼 고난을 이겨내지 않고 피는 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늘종을 못 먹는대도 좋겠다. 순리로 자라고 청춘을 만끽한 보랏빛 마늘꽃이 보고 싶다. 파종기의 이 봄날에 순순히 땅에 묻히는 씨앗들의 '겸손'을 배우고 식물들처럼 햇빛 좋은 하루를 소중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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