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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4.09 15:30:22
  • 최종수정2026.04.09 15:30:22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늘 머리맡에 있는 라디오와 먼저 인사한다. 마치 세상 밖을 향한 창문을 열듯 그렇게 아날로그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려 세상과 소통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 라디오가 잡음을 내면서 소리가 꺼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이 나는 책상 서랍에 굴러다니던 건전지 두 개를 가져와서 새로 갈아 끼운 후 다시 다이얼을 돌려 라디오를 깨웠다. 맑은 소리가 내 귓전을 때리며 음악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이내 잡음을 내면서 소리가 사라져 갔다. 나는 건전지를 다시 빼냈다가 다시 끼워 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처음 소리만 맑게 날 뿐, 이내 꺼져 가는 촛불처럼 사그라들었다. 나는 라디오를 툭툭 쳐보기도 하고, 흔들어 보기도 하면서 라디오의 생명을 연장시켜 보려고 애썼다. 한참을 그렇게 씨름을 하다가 너무나 지치고 짜증이 나서 라디오를 휙 내동댕이쳤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나는 나뒹굴고 있는 라디오의 모습을 만져보았다. 초라하게 누워 있는 이 작은 라디오를 만져보면서 나는 마치 일에 지치게 된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을 나와 동고동락했던 이 라디오야말로 나의 친구요 마누라요 자식이었다. 강산이 한번 바뀔 만한 시간에 그야말로 지칠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 라디오가 너무 불쌍하고 애처로워 보였다. 이제 건전지로도 살아나지 않는 이 라디오를 내가 그동안 너무 많이 부려 먹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라디오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건전지 같은 에너지 한번 충전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일에만 파묻혀살다 보니 이제는 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다. 나는 지금까지 젊다고 생각했는데 팔을 들면 어깨관절이 빠질 듯 아프고,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허리부터 엉덩이를 따라 찌릿한 자극이 다리까지 전해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얼른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약을 처방받아 망가지고 있는 내 몸뚱아리를 추슬러야 했다. 또 내 영혼과 정신세계는 어떠한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변화와 발전 없이 그저 과거의 일만 무한 반복하는 과중한 직장 업무 스트레스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에 마르고 굳어 가는 나의 멘탈은 벽 같은 현실 문제 앞에서 수없이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그동안 꺾일 줄 몰랐던 의욕조차 지나가 가는 엿장수에게 건네준 고물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제 청춘의 에너지를 어떻게 충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인생 건전지를 파는 가게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지친 몸을 재충전하기 위해 보통 선택하는 방법이 여행을 떠나는 일이라고 알고 있다. 잠시 일상에서 탈출하는 여행이야말로 우리에게 낯설고 새로운 자극으로 인생을 충전해주는 좋은 방법이 된다.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나에게는 이 충전 방식을 섣불리 선택하기 어렵다. 그것도 혼자 여행 가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떠나는 여행길에 스스로 낙오될 것을 예상하고 떠날 노릇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충전 여행이 아닌 고통을 갖는 일과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홀로 여행을 떠나고도 싶다.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통해 나를 충전하고 싶다. 분명히 나만의 방법으로 여행 가는 길이 있을 것 같은데, 아직 그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전혀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비록 아쉽지만 책이나 유튜브를 통해 간접 여행을 경험할 수 있고, 관광지에서 택시를 빌려 여행을 즐기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에너지가 되는 꿈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어떤 충전기보다 강력한 것이 바로 나의 꿈을 버리지 않고 용기로 잘 다듬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지쳐 가는 내 인생을 충전하는 나만의 방식이 아닌가·

언제부턴가 용기가 없어서 현실의 벽 앞에서 무력하게 그저 허우적대며 내 꿈을 방치해 온 것은 아닌지. 이 새벽녘에 홀로 앉아 나 자신을 한번 추궁해 본다. 나는 문득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라디오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라디오 소켓을 열어 새로 사 온 건전지를 끼워 넣고 라디오를 켰다. 그랬더니 아주 맑고 경쾌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그야말로 라디오가 살아나 숨쉬기 시작했다. 나는 되살아난 나의 모습을 보듯 라디오의 안테나를 길게 빼고 저 넓은 세상과 다시 소통을 시작한다.

이호상

청주맹아학교 특수교사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수강
공저: 봄, 여름 그리고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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