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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객원논설위원

벚꽃은 지기 시작할 때 가장 아름답다. 짧게 절정을 이루다 한 번에 깨끗이 스러지는 벚꽃의 극적인 아름다움에 우리는 열광한다. 벚꽃의 꽃말인 '순결'과 '절세의 미인'은 무상한 순간의 아름다움에 맞춘 듯 어울린다.

벚꽃이 일본의 국화(國花)로 알려져 있으나 일본은 법적으로 정해진 국화가 없다. 다양한 꽃과 잎이 상징으로 쓰이는데, 일본 여권에 들어있는 국화꽃(菊花)은 일본 황실의 상징, 내각총리와 정부의 상징은 오동잎, 경찰과 자위대의 휘장과 계급장은 벚꽃이 상징이다.

벚꽃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정서에 따라 벚꽃은 관습상의 일본 국화로 자리 잡았다. 일본 시가에서 특별히 꽃 이름을 지칭하지 않는 꽃(花)은 거의 벚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벚꽃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꽃이 됐다. 부러 찾지 않아도 산하를 온통 뒤덮은 벚꽃의 자태를 감상할 수 있음은 봄에 누리는 큰 호사다. 벚꽃축제가 개최되지 않는 지역을 찾기가 힘들만큼 고을마다 열리는 벚꽃 잔치를 보며 벚꽃이 이제 대한민국 봄의 전령이 되었음을 느낀다.

일본어로 벚꽃은 '사쿠라'다. 벚꽃의 꽃말이 아름다운 여인, 순수함 등 고운 이미지여서 여자아이들의 이름에 사쿠라가 많다. 여배우나 여가수의 예명도 흔하다.

사쿠라는 가짜, 변절, 배신, 위선의 뜻으로도 쓴다. 값싼 말고기를 소고기로 속여서 파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고기 빛깔이 벚꽃과 흡사한 말고기 '사쿠라니쿠'를 소고기라 속였다 해서 '사쿠라니쿠'를 줄인 사쿠라가 가짜를 뜻하는 속어가 됐다.

이런 사쿠라가 한국으로 건너와 변절한 정치인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소고기로 알고 먹은 말고기처럼 겉과 속이 다르게 정적과 내통하는 '내부의 적'임을 힐난하는 치욕적인 표현이다.

제1야당인 신민당 총재였으나 진산파동으로 정치적 위기를 겪은 유진산, 유신체제하에서 '참여하의 개혁'이란 명분아래 정권에 협력적인 자세를 취했던 이철승, 5공화국 초기 2중대인 민주 한국당을 이끌던 유치송, 신한민주당 총재로 5공화국 정권 말기의 내각제개헌에 동조한 이민우 등이 사쿠라로 공격받은 정치인이다.

자기 자리만을 지키며 행동하지 않은 야당 정치인 역시 사쿠라라는 말을 들었다.

저항시인 김지하는 1971년 담시 '앵적가(櫻賊歌)' 발표하여 세태를 풍자했다. 야권 인사 김상현이 발행하는 '월간 다리' 7월호에 게재된 앵적가(櫻賊歌)는 벚나무 꽃(櫻)과 도둑(賊), 노래(歌)가 합쳐진 제목으로 가짜고기 '사쿠라니쿠'에서 갈려 나온 기회주의자 '사쿠라'에 대한 비아냥거림이다.

'한 손으로 밥술 뜰 때 딴 손으로 소변보기/ 오른 눈이 하늘 볼 때 왼쪽 눈은 땅을 보기

한 입으로 두 말하고 귀 따로 각각 듣고/ 오른발이 첩 집 갈 때 왼발은 마누라 집

욕하며 칭찬하고, 절하며 침을 뱉고

화내며 웃고, 떨어지며 붙고, 엎드리며 눕고, 굽히며 서고/ 쳐다보며 내려다보고, 윗 놈 붙어 아랫놈 치고, 아랫놈 긁어 위에 상납

큰 기침하며 잔기침, 과부 돈으로 처녀 오입, 기다 걷다 뛰다 날다 마침내 우루루루루'

당시 야당 당수 유진산의 처신을 둘러싼 '사꾸라 론'이 팽배했던 터라 '앵적가'는 별 탈이 없었다.

다시 새봄이다. 만개한 벚꽃이 무심천에 구름으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곧 스러질 아름다움은 불안하고 우울하다. 일본 헤이안시대의 시인 '아리와라노 나리히라'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만약 세상에 벚꽃이 없었다면 봄을 보내는 마음이 얼마나 평안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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