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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4.05 15:53:33
  • 최종수정2026.04.05 15:53:33

원광희

청주시정연구원장

의사결정의 책임은 어디까지이며, 그 한계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지역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정책과 사업을 지지해 왔다. 때로는 진심으로 환영했고, 때로는 집단적 열망이 '총궐기'라는 형식으로 분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무엇을 스스로 판단했는가. 질문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의사결정의 주체가 아니라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제기되는 '5극 3특' 구상과 충청권 통합 논의는 이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 구상이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최적의 대안인지, 아니면 아직 평가와 설계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틀에 새로운 포장을 덧씌운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다. 이미 충청광역연합이라는 '미완의 실험'이 존재함에도, 그 성과와 한계를 차분히 평가하는 과정 없이 곧바로 또 다른 통합 논의로 이동하는 것은 정책의 연속성과 책임성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정책은 시행착오를 딛고 축적·학습되며 진화해야 하지만, 지금의 논의는 축적이라기보다 '프레임 전환'에 가깝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논의가 충분한 공론화 없이 정치적 구호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통합이 왜 필요한지, 어떤 제도 설계와 이행 경로를 통해 추진되어야 하는지, 그 결과 지역의 행정 효율성과 주민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설명은 매우 부족하다. 대신 '규모의 경제' '경쟁력 강화'라는 추상적 언어가 논의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이런 방식은 정책을 시민의 숙고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민주주의의 힘은 숫자의 우세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시민에게서 나온다. 그 사유의 자리를 비워 두는 순간, 동원된 합의는 쉽게 만들어지지만 책임 있는 결정은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세종시를 둘러싼 접근은 특히 신중해야 한다. 세종은 단순한 하나의 기초 지자체가 아니라,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상징이자 장기간 정책 실험의 결과물이다. 행정수도로서의 위상, 중앙행정기관 이전의 역사, 수도권 과밀 해소라는 국가적 과제가 응축된 공간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징성과 정책적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세종을 일괄 통합의 '대상'으로만 다루는 것은 위험하다. 세종은 '손댈 수 없는 지역'이어서가 아니라, 섣불리 다뤄서는 안 되는 정책적 상징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이 점을 간과한 채 밀어붙이는 통합 논의는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더 큰 틀 자체를 흔들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1차적 책임은 당연히 의사결정자에게 있다. 정책의 방향과 속도,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책임지는 것은 공직 리더십의 기본이다. 충분한 검토와 공론화 없이 추진되는 정책은, 문제가 드러났을 때 "그때는 그런 분위기였다"는 식의 책임 회피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불편한 질문이 뒤따른다. 충분한 정보와 논의 없이 이를 지지하거나 침묵한 시민은 과연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가. 민주주의는 단순한 위임 통치가 아니라 참여와 숙고를 전제로 한다. 생각하지 않는 순응은 거창한 악의 순간뿐 아니라, 일상의 작은 정책 동의 속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물론 모든 시민이 모든 정책을 전문가 수준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질문할 권리와 질문하는 태도'만큼은 포기해선 안 된다. 통합이 가져올 행정·재정·생활상의 변화는 무엇인지, 기존 제도와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되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할 비용과 위험, 그리고 되돌리기 어려운 효과는 무엇인지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론화는 이러한 질문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이다. 다양한 이해당사자와 전문가, 시민이 참여하는 숙의 과정은 단순한 의견 수렴이 아니라 '누가, 어떤 근거로, 무엇을 결정했는지'를 드러내는 책임의 절차이다. 책임이 보이는 과정이 있을 때 비로소 정책은 정당성을 얻는다.

결국 핵심은 통합의 찬반을 넘어, 그 결정이 어떤 절차와 기준, 설명을 거쳐 내려지고 있는가에 있다. 의사결정자는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책임을, 시민은 그 설명을 이해하고 다시 질문할 책임을 가진다. 그리고 제도는 이 둘을 연결하는 통로로 설계되어야 한다. 충청광역연합이라는 기존 시도에 대한 냉정한 평가 없이 새로운 통합 구상으로 이동하는 것, 세종의 특수성과 상징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 충분한 공론화 없이 정치적 합의만으로 구조 개편을 밀어붙이는 방식은 모두 책임의 공백을 확대한다.

지역의 미래는 단순한 행정구역 개편이나 숫자의 재배열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충분한 설명과 집요한 질문, 그리고 시간을 들인 숙의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형성된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어떤 정보와 논리를 근거로 통합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고 있는가. 통합이라는 이름 자체가 수단을 넘어 목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국가와 지방정부, 그리고 시민 가운데 누가,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 질 것인가. 동원된 지지에서 숙고된 선택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어떤 통합도 진정한 발전과 성숙한 민주주의로 이어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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