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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4.02 15:07:43
  • 최종수정2026.04.02 15:07:52

김나비

시인·중앙대문예창작학과 박사

집 근처로 발령을 받은 후, 나의 아침은 달라졌다. 왕복 세 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내야 했던 고단한 출근길이 집 가까이 옮겨온 지 어느덧 한 달, 단축된 물리적 거리는 내 삶의 심리적 공간을 넓혀 주었다. 같은 시간에 눈을 뜨지만,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무채색의 풍경들이,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나서는 순간 생생한 문장이 되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요즘 나는 많은 것들을 내 안에 담는다. 아니, 담는다는 표현보다는 필사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걸어서 출근 하는 동안,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새소리를 귀로 베끼고, 해사하게 벙그는 벚꽃잎의 질감을 눈으로 옮긴다. 노랗게 입을 벌리는 개나리와 붉은 울음을 토해내기 전 잔뜩 웅크린 명자꽃의 정수리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긴 몸을 늘여 기지개 켜는 영운천의 요염한 몸짓을 동공속에 담는다. 이것은 차를 타고 출근할 때는 결코 읽어낼 수 없었던, 오직 걷는 자에게만 허락된 비밀스러운 서사다.

그동안 나는 주변의 것들에 얼마나 무심했던가. 시간에 쫓겨 핸들을 돌리며 출근할 때, 아침은 목적지에 가기 위한 배경에 불과했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고 하천가에 돋아난 쑥과 말 없는 대화를 나누는 지금, 나는 비로소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자세히, 오래, 그리고 깊게 들여다보는 것은 관심이고 애정이다. 꽃 한 송이의 결을 살피고, 길가 빈터에 돋아난 작은 싹의 안부를 묻는 마음은 대상의 존재를 오롯이 긍정하는 눈길이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일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좋은 시는 화려한 수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을 발견해 내는 사랑의 시선에서 움트는 것이다. 시를 쓰는 사람은 세상을 뭉뚱그려 보지 않는다. 벚꽃의 분홍을 그저 분홍이라 퉁치지 않고, 그 안에 숨은 바람의 흔적과 햇살의 무게를 정밀하게 묘사해 낸다.

시를 꾹꾹 눌러 필사하듯 주변의 풍경을 눈에 담는 이 시간은, 내면의 감각을 시의 언어로 길러내는 수행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걸어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돌아서는 길목마다 마주치는 풋풋한 바람 내음, 아름다운 거리의 빈터에 돋아난 이름 없는 풀등. 이 모든 것을 사랑의 눈으로 볼 때, 우리의 일상은 비로소 한 편의 시가 된다. 늘 주변에 있었으나 보지 못했던 봄이 이제야 내 곁으로 와 안긴다. 운동화를 신고 출근을 하다 보면 놀이터에서 노니는 참새도, 뺨을 스치는 상쾌한 햇살도 모두가 귀한 아침 손님으로 다가온다.

오늘도 나는 아침의 길 위에 서서 봄의 문장들을 마음의 노트에 필사한다. 자세히 보는 것이 사랑이며, 그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응시할 때 비로소 진실한 시 한 줄을 건져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을 되뇌며. 내일 나의 출근길에는 어떤 봄이 기다리고 있을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영운교 아래를 본다. 흐르는 물소리 곁에 핀 봄까치꽃이 하늘빛 귀를 펄럭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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