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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3.24 17:37:18
  • 최종수정2026.03.24 17:37:17

이정민

청주시청 도시계획상임기획단·공학박사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는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으로 살아오며 겪은 차별의 경험과 그 속에서 축적된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든 기록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하나의 '불편한 페미니즘'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특정한 정체성의 경험을 넘어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소수성'의 감각을 드러낸다. 문장 사이에 녹아있는 블랙 유머와 세련된 문체는 특히 인상 깊다. 나도 이런 문장을 쓰고 싶다고, 남몰래 바라게 될 정도다.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는 '소수적 감정'을 의미한다. 소수적 감정은 지배적인 기준 속에서 자신의 경험이 사소한 것으로 밀려날 때 생겨나는 감정이다. 분명히 겪었는데도 '그건 별일 아니야'라는 말로 정리될 때 남는 찌꺼기 같은 감정. 쉽게 말해지지 않기 때문에 더 쉽게 지워진다. 이 책은 그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는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에 대하여

박사학위를 가지고 공무원으로 일하는 나는 제도와 권한의 언어로 보면 주류적 인간이다. 그러나 이 겉모습이 나의 전부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도시계획 분야에서 여성으로 일하는 나는 여전히 소수자다. 한 민원인은 설명을 듣다가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가씨는 빠져"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력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 상황을 문제 삼아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그 말은 배려처럼 들리지만, 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를 배제하겠다는 통보였다.

이런 경험은 특별하지 않다. 밤늦게 혼자 엘리베이터를 탈 때 느끼는 불안, 택시 안에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누군가와 통화하는 습관 같은 것들. 과잉된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설명되지 않는 위험을 매일 계산하며 살아가는 생존 방식이다.

소수성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의 감정은 쉽게 이해되고, 누구의 감정은 반복해서 축소되는가의 문제에 가깝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중심에 서기도 하고, 주변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그 경계는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조용히 바뀐다.

우리는 불편한 감정을 이해하기보다 설명 가능한 말로 덮어버리는 데 더 익숙하다. 《마이너 필링스》는 그 과정을 멈추고,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끝까지 마주하라고 요구한다.

나의 서툰 세계

캐시 박 홍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국으로 이민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서툰 영어 때문에 가족이 겪은 차별의 경험을 '부끄러움'으로 남겨놓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나의 서툰 영어는 굴욕의 산물이 아니라, 주류 언어가 포착하지 못하는 진실을 발화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완벽하지 않은 문장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매끄러운 언어가 감추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선언이다. 이 문장은 나에게 거대한 해방감을 주었다.

감추고 싶었던 나의 연약함과 서툼을 다시 생각한다. 그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나의 균열을 똑바로 응시할 때, 비로소 나의 서툰 삶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는 안테나가 된다.

어떤 감정은 이해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사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된다. 그 불완전함을 기꺼이 견디며, 우리는 서로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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