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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가슴이 떨리고 입이 바짝 마른다. 제주의 푸른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 보인다. 2박 3일 일정을 잘 보내고 귀가하는 날이다. 대여한 차를 반납해야 하는데 근처에서 헤매다가 전화로 위치를 물어보니 얼마 전에 이사를 했다고 한다. 공항에 가야 할 시간도 촉박한데 실수가 이어졌다. 그때 걸려온 전화 한 통은 숨이 멎을 것처럼 긴장됐다.

주간 보호센터에 다니시는 친정엄마가 갑자기 아프셔서 응급실로 가는 중이란다. 다행히 막냇동생에게 연락이 닿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렸다. 그 사이 공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지만, 심경이 복잡했다. '제발'이라는 말을 수백 번 곱씹으며 기도했다. 둘째 아들 결혼이 3주 정도 남은 상황이다. 요즘 결혼은 당사자들이 모든 걸 알아서 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거니 하며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을 해줬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서 초긴장 상태를 겪었다. 청주공항에 도착해서 연락하니 검사를 마치고 귀가 중이라고 한다. 밤이 늦었지만, 엄마네로 갔다. 친정엄마의 얼굴을 마주하니 그제야 억눌렸던 숨이 깊게 터져 나온다. 수척해진 엄마의 손을 말없이 잡으며 쓸어내렸다. 정밀검사를 다시 해야 하지만, 무사히 그 밤을 보냈다.

스물아홉 살 아들은 내게 든든한 나무이자 때로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아픈 형의 그림자에 가려 어리광 한 번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스스로 단단해져야 했던 아이. 남들보다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대견함보다 미안함이 앞섰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런 아들이 이제 곁을 지켜줄 반려자를 만나 제 갈 길을 가려는데, 친정엄마의 소식은 나를 다시 한번 겸허하게 무릎 꿇게 했다.

인생의 큰 경사를 앞두고 '호사다마'라는 말을 떠올리며 긴장한다. 특별한 것을 바라기보다는 어제와 같은 오늘, 그리고 오늘과 다름없을 내일이 이어지는 '무사(無事)'함뿐이다. 평소 신앙심이 깊은 편은 아니지만,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아들의 앞날을 위해 낮은 기도를 드린다. 욕심을 부릴 것도 없이 하루를 보내며 친정엄마에게 들른다. 무탈하게 잘 보내셨는지 손을 잡고 나온다.

아들 결혼식에서 축복의 말을 하기로 했다. "애썼다,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라는 진심을 전하고 싶다. 비바람 치는 제주에서 간절히 빌었던 그 마음 그대로, 아들의 앞날에 대단한 행운은 아닐지라도 비를 피할 작은 지붕과 쉴 수 있는 평상 같은 '무탈함'이 깃들기를 바란다. 엄마가 내게 그러했듯, 나 또한 아들의 생에서 가장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싶다. 오늘 밤, 평온하게 잠든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비로소 안도한다.

눈을 감는다. 손주의 결혼식 날, 고운 옷을 입고 웃는 엄마는 봄꽃보다 아름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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