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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3.19 15:26:49
  • 최종수정2026.03.19 15:26:49

홍성란

수필가

본다고 모든 게 보이며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본다는 건 사물이나 상대를 파악하는데 가장 먼저 취하게 되는 본능적 행위다. 회화에서도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그리는 초상화의 경우 정물화나 풍경화보다 '보다'의 의미는 간단치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아야 그 사람의 인생과 본질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을 여러 시선으로 풀어낸 화가를 만나러 왔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사과를 그린 화가 폴 세잔(1839-1906)이다. 이번 전시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와의 특별 전시다. 두 사람의 대표작이 걸려 있는 장소는 한가람 미술관.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관객을 맞이한 작품은 세잔의 아내 오르탕스 피케(1850-1922)와 르누아르의 아들 초상화였는데, 세잔 아내 그림이 맨 앞에 걸려 있다. 당연히 사과나 풍경화를 예측했던 내겐 의외였지만 엄연히 그녀는 세잔의 아내요 뮤즈가 아닌가.

평범한 중년 여인이다. 목을 살짝 가린 네크라인의 진한 파랑색 드레스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단정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다. 꼭 다문 입이며 수수한 옷차림에서 소박함, 단단함이 묻어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저렇게 무표정할까. 하기사 내가 보았던 몇 편의 그림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작품 역시나 무표정이다. 혹자는 남편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았던 그녀가 아니냐고 힐난할지 모르나 부부의 사정은 부부만 아는 법.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40여 편의 초상화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왜 아내의 얼굴에 표정을 담지 않았을까. 이 의문은 아마 세잔의 위대함을 알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두꺼운 질감과 짧고 거친 느낌이다. 따뜻한 살색과 차가운 파랑색, 볼에는 옅은 붉은 기운으로 색의 입체감을 나타내서 온도 차이로 볼륨을 느끼게 한다. 대다수 인상파에서 보이는 찰나의 빛과는 다르다. 그래서일까 눈의 높이가 다르고 코도 비대칭이고 턱도 완벽한 대칭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윗입술보다 아랫입술은 색채보다 형태 위주로 그린 것 같고, 방향 각도에 따른 왼쪽 귀가 훨씬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이는 빛이나 색채 명암만이 아닌 그녀라는 존재를 오랜 시간에 걸쳐 그린 게 아닌가 싶다.

왜였을까. 그녀는 오랜 세월 남편을 묵묵히 수발한 내조의 여성이다. 순간의 얼굴이 아닌 시간이 쌓인 얼굴을 그리기에 아내만큼 편하고 잘 아는 사람이 누구였겠는가. 세잔은 "나는 한순간의 얼굴이 아니라 지속되는 시간 동안 쌓여진 얼굴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의 이런 철학은 즐겨 그렸던 빅토아르산과 아내의 초상화에 긴 시간에 걸친 어제, 오늘을 겹쳐 놓았던 것 같다.

겹쳐 있다는 건 오랜 시간이 쌓여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모습으로 존재하는가가 드러난 존재의 구축이다. 그걸 그 시간을 그 삶을 한순간에 어떻게 한 화면에 담을 수 있겠는가. 설사 단시간에 완성했다 해도 그건 한순간에 벗겨질 얇은 표피에 불과하다. 세잔은 시간을 통해 파괴했다. 그리하여 피케의 초상화에 세잔 부인이라는 한 세계를 구축했다.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건 자기의 방식, 자기의 기억. 자기의 감정으로 자기 세계를 만든다는 말일 게다. 우리 역시 세잔과 비슷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려 애쓰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순간이 쌓여 시간이 되고 세월이 쌓여간다. 어쩌면 산다는 건 그렇게 쌓이고 쌓여 "나"를 구축하고 그것이 곧 세잔의 작품에 백번의 표정이 겹쳐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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