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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3.15 14:44:17
  • 최종수정2026.04.13 16:02:23

박명애

수필가

며칠 귓속이 가렵다. 새끼손가락으로 후벼보아도 감질날 뿐 시원하지 않다. 마음먹고 귀이개로 보이지 않는 가려움의 근원을 찾는다. 얇은 대나무 손잡이가 외이를 스치고 작은 스푼이 들어가는 소리에 온 신경이 쏠린다. 하지만 귀이개를 찾던 용기는 어디 가고 소심하게 외이도 입구에서 맴돌다 멈추고 만다. 겁이 많아 내 귀지도 파지 못하는 나는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 귓속을 들여본 적이 없다. 딸애는 손재주가 있는지 가족의 귀 청소를 가끔 해주곤 하는데 귀를 내어준 이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나 역시 어쩌다 귀를 맡길 때도 있지만 덜덜 떨며 엄살을 부리다 끝까지 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실 귀지는 그대로 놔두는 게 좋다고 한다. 잘못 파내다 상처가 나고 세균에 감염되기라도 하면 염증이 생겨 오히려 귀 건강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끔 귀가 가려우면 손이 가게 된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신경 써서>에도 귀지로 고생하는 남자 로이드가 나온다. 남편인 로이드의 알콜 중독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부부는 이혼의 위기를 겪는다. 로이드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 별거를 선택하는데 귓구멍을 막고 있는 귀지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그는 이주 만에 할 말이 있다며 찾아온 아내에게 귀지로 인한 불편함만 얘기할 뿐 아내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아내 이네즈는 베이비 오일을 이용해 귀지를 꺼내주고 돌아선다. 로이드는 떠나는 아내의 등에 대고 이제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 화장실 변기 뒤에 샴페인을 감춰 두고 마시고 있는 데다 늘 자신의 말에 동문서답하는 로이드에 아내는 이미 지쳤기 때문이다. 이혼하자는 말이 두려운 로이드는 아내의 말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들은 서로 소통할 수 없었다. 귀지 때문이 아니라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 써서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뭔가 하긴 해야지. 일단 이것부터 해보는 거야. 만약 그래도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그게 인생이야. 그렇지 않아·'라고 이네즈는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문제만 이야기하는 답답함은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주제를 두고 토론하는 자리에서도 상대의 이야기는 흘려듣고 내 의견이나 주장을 관철 시키려 애쓰는 모습을 종종 본다.

요즘 선거를 앞두고 있어 그런지 여기저기 말들이 넘친다. 가까운 이의 말은 흘려들으면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소식들은 생각 없이 듣고 입에서 입으로 전하곤 한다. 『사기』에는 아들 증삼이 살인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엔 믿지 않던 어머니가 여러 번 듣게 되자 베틀에서 내려와 도망쳤다는 고사(讒言三至慈母不親)가 있다. 근거 없는 말도 계속 듣다 보면 사실인 것처럼 믿게 되는 것을 말한다. 어떤 말이든 잘 들어야 이면에 숨은 뜻을 읽을 수 있다. 귀찮다말고 정치인들의 메시지에도 진심으로 마음을 기울여야 올바른 변화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메마른 봄날, 밖에는 이슬비가 살짝 뿌리고 있다. 하루쯤 밤새 내렸으면 좋겠다. 누워서 빗소리를 듣다 보니 묵은 병도 나았다던 옛시인들의 풍류가 그립다. 그럼 마른 귀지도 촉촉해져서 가려움도 사라지고 마음도 부드러워져서 귀가 더 크게 열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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