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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3.16 14:04:30
  • 최종수정2026.03.16 14:04:30

노상학

지적박물관 학예연구사

태정관 지령은 일본이 독도 영유권의 핵심 근거로 내세우는 '1905년 시마네현 고시'의 논리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일본 정부는 러일전쟁 와중에 독도를 주인 없는 땅(무주지)으로 간주하고 선점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불과 28년 전, 동일한 정부 최고 기관이 "우리와 관계없는 땅"이라고 판결했던 섬이 어떻게 갑자기 주인 없는 땅이 되었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국제법에서는 국가의 말과 행동의 일관성을 중요하게 판단한다. 한 국가가 공식적으로 표명한 입장은 이후의 주장과도 연결되어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른바 '금반언(禁反言, Estoppel)의 원칙'이 거론되는 이유다. 물론 구체적인 법적 적용을 둘러싼 논의는 신중해야 한다. 다만 과거의 공적 기록과 이후의 정책 사이에 놓인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여전히 남는 질문이다.

최근 학계의 실증적 연구 성과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1870년대 일본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 사이의 행정 문서를 분석한 결과, 당시 정부의 인식이 얼마나 확고했는지 속속 밝혀지고 있다. 1775년 제작된 일본 고지도 초판본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와 달리 무채색으로 그려진 배경이나, 일본인들의 울릉도 도해(渡海) 요청에 정부가 "조선 영토이므로 갈 수 없다"라고 거부했던 사례들이 그 증거다. 이는 태정관 지령이 우연한 결정이 아니라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일본의 인식을 국가 차원에서 재확인한 필연적 과정이었음을 증명한다.

이 대목에서 호리 카즈오라는 이름은 깊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한국 주장을 대변하기 위해 펜을 든 인물이 아니다. 일본 사학자로서 자국 문서를 정직하게 읽고, 진실을 있는 그대로 내놓았을 뿐이다. 국가주의 파도 속에서도 기록의 엄정함을 지켜낸 그의 작업은 외부 비판보다 내부 자성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지 보여준다. 그의 양심은 독도가 민족 감정의 배출구가 아니라 근대 국가의 일관성과 신뢰를 묻는 이성적 공간임을 웅변한다.

독도는 우리에게 소중한 영토다. 그렇기에 더욱 차분하고 치밀한 언어를 가져야 한다. 감정이 앞서기 쉬운 문제일수록 기록은 더 차갑게 읽혀야 하기 때문이다. 150여 년 전 일본 정부 스스로 남긴 기록은 오늘의 주장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할 일은 분노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문서를 다시 펼쳐 논리의 성벽을 쌓는 일이다. 독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켜내는 확실한 방법은 우리가 이 기록의 증언을 끝까지 읽어내고 기억하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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