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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3.11 15:04:50
  • 최종수정2026.03.11 15:04:49

이두희

수필가·시인·구술 채록 작가

[충북일보] '건축학개론'이란 제목의 영화가 있다. 내용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서로 좋아하고 있으면서도 고백을 하지 못해 아쉽게 깨져 버린 두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전체 줄거리다. 그런데 그 흔한 첫사랑 이야기에 왜 '건축학개론'이라는 제목이 붙었을까· 그러나 그 생뚱맞은 불협화음이 이 영화의 핵심 장치였다.

처음 그 영화가 개봉됐을 때, 제목이 미묘한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제작자들의 의도성이 다분한 미끼일 거라는 선입견으로 거부감이 들었고, 일부러 외면했다. 얼마 후 그 영화가 의외로 인기가 높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특히 젊은이들이 그 얄팍한 상술의 미끼에 걸려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론(槪論)'이란 말도 한몫했다. 그 단어는 대학 입학 후 처음 접하게 되는 낯선 강의와 두툼한 교과서 제목에 붙는 이름이다. 이 제목이 붙으면 고등학교 그것들과 다른 고차원적인 뭔가가 들어있는 것 같아서 실제 열어보기도 전에 위압감부터 느껴야 했다. 그런데 그게 영화의 제목이라니, 더구나 시멘트와 철근, 나무들을 구조화해야 하는 '건축학'이란 타이틀을 앞세우고 있어서 사랑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고집스럽게 그 영화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영화의 정체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마치 짝사랑의 미련처럼 남아 있다가 마침내 온라인으로 훔쳐보고야 말았다. 영화를 보면서 나의 시각은 그 제목이 어디서 왔는지부터 찾고 있었다. 건축학과 남학생과 음대 여학생이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 간다는 설정이 그 시작이었다. 그 단순한 설정에서 파생되는 사랑과 건축이란 두 개념의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이 영화의 줄기이고 몸통이었다. 작가는 집을 짓는 것과 사랑을 시작하는 일을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 설계가 있어야 집 짓는 공사가 시작되듯, 사랑도 막연하지만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어떤 구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초가 약하면 건물이 흔들리듯, 신뢰가 약하면 남녀관계도 결국 금이 가고 마는 것인가. 완공되지 못한 건물이 공터에 남겨지듯, 고백하지 못한 첫사랑 역시 마음 한구석에 휑한 뼈대의 형태로 남지 않는가. 영화를 보고 나서 나의 고집스런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를테면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다. 그 소설을 읽기 전까지 한여름에 잠시 쏟아졌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소나기를 순수한 첫사랑의 기억과 연결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소설의 무대인 징검다리 개울에 풍덩 빠져본 후 '소나기'라는 말은 더 이상 단순한 기상 현상에 머물지 않았다. 지금도 아릿하면서도 선연한 사랑의 이미지가 그 단어 위에 겹쳐진다.

어쩌면 문학에서 느끼는 쾌감은 상상하지 못했던 반전에서 출발해서 공감으로 이어지는 심미적 형식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말도 안 돼"라는 강한 부정 속에는 정말 말이 안 되는지, 혹은 어딘가에서 연결될 여지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두 개념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공통분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먼 거리에서 한 가지 공통성을 발견해 내는 순간, 사고는 짜릿한 전환을 경험한다. 불가능해 보였던 두 점 사이에 선이 그어질 때, 우리는 마치 비밀 통로를 발견한 것처럼 은밀한 기쁨을 맛본다. 그 쾌감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이해했다는 지적 전율일 것이다. 창작이란 그렇게 개체와 개념들 사이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주제요, 작업의 시작이라고 할 것이다. 시는 사물과 감정을 연결하고, 소설은 사건과 의미를 연결하며, 영화는 이미지와 기억을 이어 붙인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것들 사이에서 닮은 결을 찾아내는 일, 그 닮음이란 작은 실마리로 강을 건너는 다리를 놓고 아름다운 마을 하나를 만들어 가는 일이 곧 창작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이제 '건축학개론'이라는 제목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그것은 단지 첫사랑을 다룬 영화의 이름이 아니라, 연결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하나의 장치였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영화나 책을 고를 때 자극적인 제목은 관객이나 독자를 유혹하는 미끼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작가가 던지는 화두로 볼 때 선입견이 무너지는 쾌감도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이두희 수필가·시인·구술 채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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