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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흙 묻은 고구마 한 무더기를 캤다. 호미 끝에 걸려 올라오는 것은 묵직한 어미 고구마만이 아니다. 그 곁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조그만 어린 고구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나온다. 서로의 몸을 바짝 붙인 채 흙 속에서 여름을 지냈을 그들의 모습에서 문득 잊고 지냈던 우리 팔 남매의 상머리가 겹쳐 보였다.

그 시절 우리 집 식사 시간은 엄하고 무거웠다. 상머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 남매들의 시선은 오직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끝에 머물렀다. 어른들께서 수저를 드셔야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식사 시간은 배고픔을 참고 예의를 지켜야만 했다.

그 당시 밥상머리를 생각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저 흙 속의 고구마 형제들도 우리처럼 식사 예절이 있을까· 어미 고구마가 먼저 영양분을 다 빨아들이길 기다렸을까· 아니면 그저 서로의 살결이 닿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더운 여름을 버틸 힘을 얻었을까· 적어도 그때의 우리는 부족함 속에서도 '함께'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도감을 먹고 자랐다.

어른들이 계시니 집안의 질서는 엄격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랫목이 따끈한 안방의 주인이셨고 부엌일로 분주한 어머니와 아버지는 주방 가까운 방에 자리를 잡으셨다. 그리고 남은 공간은 우리 팔 남매의 차지였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모여 앉아 방을 나누었다.

낮 동안의 우애는 해가 지고 이불을 펴는 순간 시험대에 올랐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이불 한 채는 팔 남매의 몸을 다 덮기에 늘 짧고 좁았다. 불이 꺼지면 어둠 속에서는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한쪽에서 당기면 다른 쪽 발치가 시리고, 누군가 몸을 말면 누군가는 맨바닥의 냉기를 견뎌야 했다. 밤사이 벌어지는 이불 쟁탈전 속에 낮에 쌓았던 '정'은 잠시 뒷전이었다. 당장 내 몸 하나 보호하겠다는 본능이 앞섰고 그 치열함 속에 서운함의 골이 패기도 했다.

하지만 신기한 일은 아침마다 일어났다. 눈을 뜨면 밤새 이불을 빼앗아갔던 얄미운 언니의 얼굴도, 내 자리를 침범했던 여동생의 잠투정도 햇살 아래 녹아내렸다. 콩알 한쪽이라도 생기면 팔 등분을 해서라도 나눠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끈끈한 정이 다시 움텄다. 밤에는 개인의 생존을 위해 싸웠지만, 낮에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보듬었다. 이불 한 채를 두고 다투던 그 좁은 방은 어쩌면 미움의 장소가 아니라 서로의 체온이 없으면 단 하룻밤도 평온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배움터였던 셈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물질이 흔한 세상이 되었다. 내가 자라던 시절과 달리 우리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잔다. 더이상 이불을 뺏기 위해 발길질을 할 필요도 콩알 한쪽을 나누기 위해 칼날을 세울 필요도 없다. 하지만 몸이 편안해질수록 마음 한구석은 시려온다. 부족함이 없으니 나눌 기회도 사라지고, 투쟁도 없으니 화해의 기쁨도 없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이 풍요가 때로는 무겁게 다가온다. 고구마 줄기처럼 촘촘하게 엮여 있던 사람 사이의 줄기가 하나둘 끊어져 나가는 것 같아 겁이 난다. 예전에는 이불이 모자라 정이 달아날까 걱정했다면 이제는 이불이 너무 많아 서로의 체온이 필요 없어질까 두렵다.

'너무 흔하게 쓰고 나누면 나중에 벌받는다.'라던 할머니의 옛 말씀이 귓가를 맴돈다.

다시 고구마를 본다. 큰놈 곁에 작은놈 그 곁에 더 작은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들은 알고 있는 듯하다. 홀로 크고 잘나 보이는 것보다 비좁은 흙 속에서 비등비등하게 서로 어깨를 비비며 엮여 나오는 것이 진짜 '결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질의 풍요 속에 사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넓은 집이나 더 비싼 이불이 아닐지도 모른다. 부족한 이불을 나누기 위해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던 그 불편한 따스함, 아침이면 다시 콩알을 나누던 그 투박한 진심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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