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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3.09 14:51:00
  • 최종수정2026.03.09 14:51:00

김산옥

괴산문인협회 회원

오랜만에 내 작은 정원을 보았다. 정원은 눈폭탄에 푹 파묻혀 하나의 외로운 섬처럼 보였다. 며칠이 지나 강추위가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정원의 속살이 드러났다. 자신의 치부를 감싸지 못하고, 포기한 듯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부끄러움도 없이 널브러졌다. 나는 겨울 내내 방치했던 정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한 바퀴 돌아보았다. 정원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생채기가 깊었다. 디딤돌 사이사이 잔디가 솟을대문처럼 솟아올랐다. 무너지지 않게 쌓은 돌멩이 일부가 여기저기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그 모양이 활엽수의 커다란 낙엽처럼 보였다.

이탈리아는 국토 전체가 문화 유적지로 옛 고대 로마의 문명을 간직한 나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장소로 로마 교황청이 있다. 일국의 독립국으로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며 그 영향력은 전 세계에 미치고 있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유물과 유적이 있다. 그중 피사에 있는 대성당의 원형 종탑으로 사탑이 있다. 이 탑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탑은 희한하게도 무너지지 않은 채 몇백 년을 잘 버티고 있다.

나의 정원에 있는 조명등 하나가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는 걸 발견하였다. 이놈이 궁금하여 가까이 가서 확인을 하였다. 기어코 애처로운 일이 발생했다. 조명등의 다른 하나는 노숙인의 몰골을 하고 바닥에 길게 누워있었다. 동장군이 몇 번 다녀간 후 훈풍으로 얼었던 지반이 녹아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고 결국 쓰러졌다. 나는 조명등을 일으켜 보려고 애를 썼으나 지면과 한 몸처럼 붙어있다. 강한 눈보라에 중심을 잃고 쓰러져 있었던 기간이 길었던 모양이다. 엄동설한에 누워있었던 모습이 사물이 아닌 사람처럼 보였다. 애처로움으로 다시 용을 써보지만 등(燈)은 꼼짝하지 않는다. 나는 허리가 부러지기라도 할까 염려스러워 중간에 포기를 하였다. 척추 역할을 하는 지지대가 부러지기라도 하면 여간 낭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자연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다. 오직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을 믿고 쓰러진 그를 그대로 놔둔 채 빠져나왔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순간 그때 위로와 함께 홀로 설 수 있게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5년 전 정원을 조성하면서 조명등 2개를 설치했었다. 그러나 간격이 턱없이 넓어 보였다. 2개를 추가로 구매했더니 미적으로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어두움이 몰려올 즈음 그들은 밝은 빛을 발하며 외쳤다.

'' 여기는 내 구역이다 ''

그 용도가 좋았다.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든든한 쌍둥이 4형제를 길러내는 어미의 심정이 이럴까· 그런데 한 아이가 쓰러졌으니 나만 아픈 게 아닐 것이다. 낯선 장소에서 서로 뭉친 조명등은 형제 같은 우애를 돈독하게 지냈을 것으로 믿는 내 마음이 그들에게 투영되어 보였다. 역시 나의 믿음에 호응을 한다. 그들은 빛을 더 강렬하게 쏘아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겨울이 되면 늘 살아 움직이는 토지이기에 매년 토질의 불균형이 일어난다. 그 영향으로 잠시 쓰러진 형제의 몫까지 하느라 그들은 진땀을 흘린다.

쓰러진 者여~

너를 위해서 네가 외롭고 무서워할까 더 큰 빛을 쏘아대느라 애쓴 형제들은 혼자가 아니라고, 조그만 버티라고, 응원한다고, 그런 마음이 너에게 전달되었으리라~ 서로가 조금씩 떨어져 있으나 각자 맡은 역할은 똑같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깜깜한 밤(夜)을 밝혀주는 너희는 정원 한 곳을 비추는 게 아니라 그 주변까지도 온기를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상생을 하고 있으니 따스한 햇살은 언제고 너희들을 꼭 품어주리라 믿는다. 무한한 것은 없으니.

우리는 자연이라는 원 안에 있다. 그 속에서 서로를 보살피고 살아가는 동반자이면서 공동운명체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각기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회전하듯이,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와 같은 행성들이 회전하듯이, 너와 나 우리도 하나의 동그라미 안에서 어떤 보호막을 형성하면서 회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 작은 정원의 조명등 4개가 형제처럼 다정하다. 우리는 하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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