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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3.03 15:38:37
  • 최종수정2026.03.03 15:38:37

이은일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요즘 종종 내 책을 읽었다는 인사를 받는다. 지난해 말 지역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처음으로 개인 수필집을 냈다. 등단하고 10년간 몇몇 잡지와 지역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다듬어 책으로 엮은 것이다. 출간 직후까지도 넘쳐나는 책 공해에 한 권 더 보태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인생의 중간 점검으로 한번은 해야 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내 글을 진심으로 읽어주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공감해 주고, 소감을 얘기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응원이 되는지 처음 알았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고스란히 보이더라는 말을 들었을 땐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앞으로 더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AI가 쓴 글 무덤에 파묻혀 있다가 사람 냄새나는 아름다운 글을 읽으니까 너무 좋더라'라는 말도 들었다. 서툰 글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었을 테지만 인간적인 글이라서 좋다는 뜻으로 느껴져서 나는 듣기 좋았다.

지난겨울에 친구들과 동남아 여행을 다녀왔다. 보트 투어 사진 중 우리 사이에 사공이 주인공처럼 찍힌 것이 있었다. 그 사진 속 사공을 AI로 지워 보았다. 확대해서 봐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쪽같았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사진 보정뿐이겠는가. 목적이나 형식, 필수 내용 등 조건만 잘 제공하면 AI가 그림도 그려주고 노래도 만들어주고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글도 써주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핸드폰 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고, 길 안내 앱이 너무 잘 되어 있어 처음 찾아가는 길도 걱정하지 않을 만큼 이제 인공지능의 활용은 거의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기술과 편리성이 좋아질수록 AI를 이용한 범죄도 늘어난다는 것이 문제다.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인공지능을 닮아가고 있는 걸까. 어떤 범죄자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생각난다. 책에서 그린 먼 미래는 모든 인간이 걱정 근심 없고, 아무런 불만 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이상적인 유토피아다. 항상 행복할 수 있는 건 도파민이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게 해주는 '소마'라는 알약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이런 알약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주기적으로 감정을 조정당하며 사는 것이라 해도 죽을 때까지 최상의 컨디션으로 살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소마는 순수한 인간의 정신을 거짓 행복으로 왜곡시키는 일종의 속임수일 뿐이다. 고장 날 때까지 기름칠해 쓰다 버리는 기계와 다를 것 없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이 책의 제목은 역설을 말한 것이었다.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챗지피티에 고민을 털어놓았다가 큰 위로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세상 어떤 사람이 그토록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주겠느냐며. 요즘 들어 많은 사람이 AI 상담을 찾고 있는 듯하다. 우선 대면 상담에 비해 자기 오픈의 부담이 없고 시간과 장소의 제약도 적다. 전문적인 지식과 방대한 자료로 정확한 분석 결과를 내놓는 것은 물론이고, 내담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믿을만한 조언도 제시해 주니 만족도도 꽤 높은 편이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고민을 해결해 나가려는 생각보다 소마 같은 위로에 자꾸 의존하는 것일까 봐 우려스럽다.

이 시대의 글쓰기는 '사람의 이야기'여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사람으로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은 멋진 신세계가 아닌 사람 냄새 가득한 오래된 미래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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