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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객원논설위원

갓 예순 다섯 살 된 A씨가 오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칠순의 B씨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는다고 폭력을 행사했다. 수도권 전철 안에서 있었던 해프닝이다.

당연히 경로우대를 받아야 할 형이 젊어 보이는 외모 탓에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생에게 수모를 당한 꼴이다. 동안(童顔)을 경쟁력의 최고 조건으로 쳐주는 작금인지라 어려보이는 외모 때문에 분란이 일어난 전철폭행사건이 여느 사건사고보다 재미지게 느껴진다.

자신보다 젊어 보이는 상대에게 어린 것이 교통약자석에 앉아 있다고 소동을 벌인 A씨는 경찰에 인계되면서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웬 젊은 사람이 경로석에 앉아 있어 기분 나빴다"고 했다.

연배가 높은 분인 줄 몰랐다며 미안하게 됐다는 가해자의 사과에 죄 없이 뺨을 맞았던 피해자 B씨는 "처음에는 경황이 없었는데 이 씨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연장자에 대한 예우가 극진했던 시절에는 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가 존경받아 마땅할 조건이었다. 세상이 변하면서 노인에 대한 깍듯한 예절이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버스나 전동차 안에서는 나이가 특권인 것을 보게 된다.

한 할아버지가 전동차 안 경로석에 태연히 앉아 있는 젊은 청년에게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라며 호통을 쳤다. 당돌한 청년이 자기도 요금내고 전동차 탔다고 대들자 노인이 조용히 타일렀다.

"니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이 자리는 돈 안내고 타는 사람만 앉는 자리야"

어린 것이 감히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주먹을 휘두른 육십 대 A씨는 스스로를 상노인이라 여기는 애늙은이다. 예순 다섯이면 아직 할아버지 소리가 듣기 싫을 나이련만 전동차 안에서 경로우대 받아야 할 노인으로 자신을 알리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아직 혈기가 남아 있어 말보다 주먹이 앞선 그가 젊은 이성 앞에서도 빈 자석이나 두리번거리는 노인 행세를 하려 할까 비틀린 생각을 하게 된다.

연령대별로 우리 인생을 정리해 보면 대충 이렇다고 한다. 유아기를 지난 12세는 처음 돈의 위력을 알게 되는 나이, 19세가 되면 어떤 영화도 볼 수 있는 나이다. 성인에 들어선 24세는 후배에게 사회정의를 넘기는 나이, 29세는 아무리 변장을 해도 진짜 물 좋은 곳에는 못 가는 나이, 삶과 타협한 38세는 책과 거리를 두게 되는 나이, 인생의 정상에 이른 48세는 돈을 제일 많이 버는 나이다.

장년에 접어드는 50대 중반은 TV앞에 앉는 나이, 62세는 젊은 여자가 부담스러워지는 나이, 66세는 학원간 손녀를 기다리는 나이, 73세는 누가 옆에 있어도 방귀를 뀔 수 있는 나이, 이제 완전히 노인으로 접어든 86세는 무슨 짓을 해도 그러려니 하는 나이, 99세는 가끔 하나님과도 싸울 수 있는 나이, 100세는 인생의 과제를 다 하고 그냥 노는 나이라고 했다.

인생이 이런 수순을 밟는다면 서글프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실제 나이와 생물학적 나이는 차이가 크다.

실 예로 유명한 프랑스의 복식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팔순에도 청년들의 시선을 끌었고 독일의 세계적인 문학가 괴테는 74세의 노령으로 19세의 처녀 '우를리케 폰 레베초'를 사랑하여 연모의 정이 담긴 시집 '마리엔바트의 비가'를 남겼다.

누구라도 나이를 비껴갈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이를 의식하며 일부러 대충 포기한 삶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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