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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두

시인·시낭송가

머그잔과 화병을 모아온 지 꽤 됐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다 보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컵이며 화병이었다. 하나둘씩 쌓인 것들이 이제 더 둘 데가 없다. 그래도 눈에, 마음에 들면 우선 손이 간다. 하나의 취미가 된 셈이다.

언젠가 선배 문인이 머그잔 모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유럽풍 머그잔을 선물 해 준 적이 있다. 그 컵에는 베이지색과 연둣빛 톤으로 은은한 건물 외벽 아래 노천까페에서 정장 차림을 한 커플이 봄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포도주를 마시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때 앞치마를 두르고 와인 쟁반을 들고서 어깨너머로 이들을 바라보는 웨이터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오고 여유로운 오후 아늑하고 낭만적인 수채화 같은 분위기에 빠지는가 하면 1870년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마네(Edouard Manet)가 사랑했던 빠리의 까페 풍경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내가 모은 컵이나 화병은 모두 도자기로 만든 것이다. 도자기는 우선 표면이 매끄럽고 윤기가 흘러 보기 좋다. 또한 윤곽이 곡선이다. 몇 년 전 강화도 어느 사찰 다원에 전시된 화병에 필이 꽂힌 적이 있었다. 전체 모습은 역삼각형으로 허리가 여인네 허리처럼 잘록한 일반적 형태가 아니었다. 그 작은 원형 받침에서 꽃처럼 피어난 곡선 같은 직선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망설임 없이 고이 모셔 와 마냥 눈길이 닿는 곳에 진열해 놓고 감상하는 쏠쏠한 재미를 누린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핸드폰에 뜬 달항아리 광고를 봤다. 전에 달항아리를 아주 좋아하는 어느 시인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유약의 질감이 광택을 거의 내지 않아 빛을 반사하지 않는 무광 상태(matte)란 매력에 바로 꽂힌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도 절로 은근히 드러나는 모습이 진실하다. 또 바로 고이 모셔 놓으니 너무도 자연스러운 곡선이 압도한다. 애써 빛나지 않아도 빛나는 달빛이 그대로 방안에 흐르는 듯하다. 나의 취향이 바로 저격받는 느낌이다.

화병이나 화분 등 무생물에 식물이란 생명체를 들이면 차원이 달라진다. 화병에 꽃을 꽂으면 화병이 생명으로 탄생하는 듯하고 화분에 꽃나무가 커가면 주변 세상이 바뀐다. 잎을 내어 줄기를 키우고 끝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은 하나의 이야기이고 경이로움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삶처럼 유한하다. 생명이 근원적인 한계를 가지기에 생명을 담는 그릇이 그 자체로 애착이 가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든지 자주 보고 접하면 가까워진다. 마음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발길이 이슬에 젖듯 정이 든다. 이 단계에 이르면 생명이든 아니든 애정에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달항아리의 질감과 자연스러운 곡선, 그 단순 소박미는 볼수록 정이 깊어져 간다. 여러 모양의 화병들도 다 나름대로 멋과 느낌이 있고 머그잔도 각기 다른 모습에 특유의 스토리가 겹치면 더 애정이 솟는다. 부부간의 애정도 그렇지 않은가. 늘 가까이 보고 부대끼다 보면 알게 모르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그렇게 평생의 반려로 남는다.

취향이 수채화 물감처럼 번지는 것들은 무엇이든 정이 든다. 나는 이것을 취향(趣向) 정감(情感)이라고 부르고 싶다. 생명은 유한한데 취향이 깃든 정감은 생명력이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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