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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2.22 14:07:17
  • 최종수정2026.02.22 14:07:17

이명순

수필가·한국어강사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제사를 지내는 집이 점점 줄어가고 명절 풍경도 예전 같지 않다. 명절에만 차례를 지내는 집도 있고 어떤 집은 제사를 안 지내기도 한다. 딸만 둘인 우리는 결혼한 딸은 시댁에 갔다 오고 작은딸은 귀성길이 복잡해서 기제사만 지내기로 했더니 명절이 쓸쓸한 휴일로 변했다.

둘째 며느리인 여동생은 그동안 맏며느리 노릇을 하느라 명절이 분주했는데 올해부터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일본에 사는 큰아들을 만나러 작은아들과 간다기에 나도 딸과 동행하기로 했다. 명절 연휴에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뒤로는 설날이나 추석의 명절은 이미 예전의 그 명절이 아니었다.

청주공항으로 향하는 길, 문득 명절이 공허한 휴일처럼 느껴졌다. 친정도, 시댁도 더 이상 내가 가야 할 집, 갈 수 있는 집은 아니었다. 차례를 지낸 후 떡국을 먹고 세배를 드리던 의례는 사라졌고, 올해는 비행기표와 여행 가방이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그런 아쉬움도 잠시였고 주부가 명절에 집안일을 벗어난다는 것은 후련함과 자유로움,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함께 공존했다.

도쿄에 도착해서 먼저 여동생네 일본 사돈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조카며느리는 한국어를 많이 익혀 예전보다 대화가 수월했지만,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큰 조카가 통역을 맡아 양쪽 분위기를 이끄느라 고생했지만 서로 배려하는 마음 덕분에 식사는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내가 자주 만나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떠올랐다. 그녀들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이런 마음이었을까. 무슨 말을 하는지 온전히 알아듣지 못한 채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던 모습이 생각났다. 우리는 통역이 있어도 답답했는데, 그녀들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잠시 타인의 자리로 옮겨 보니, 그동안 헤아리지 못했던 마음이 보였고 역지사지로 공감할 수 있었다.

저녁에 남동생 가족도 합류해 식사하다가 재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아무 때나 고향집에 갈 수 있었다. 지금은 집은 그대로인데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쓸쓸함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집은 그대로 남아 있어도 그 집을 존재하게 했던 중심이 사라졌기에 자식들의 마음은 허허롭기만 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명절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우리가 여유로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낯선 나라의 음식을 먹으며 웃고 즐겨도, 마음 한켠에는 부모님과 함께 떡국을 먹던 고향집의 추억이 사라지지 않는다. 명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돌아갈 자리, 어머니가 계셨던 그 자리를 잃은 듯했다.

우리 딸들이 집에 가고 싶을 때 "엄마"하고 부르며 찾아올 수 있는 곳이 지금 내가 사는 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두는 일, 그것이 부모의 몫이라는 것을 부모를 잃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돌아갈 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새삼스레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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