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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2.12 13:56:38
  • 최종수정2026.02.12 13:56:38

윤진영

세명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곧 있으면 설이다. 아버지가 7남매의 장남이었기에, 어린 시절 명절은 늘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친척들이 한데 모여 차례 음식을 만들고 명절 준비를 하느라 집안은 종일 분주했다. 여러 사람들의 방문으로 우리는 각자의 방을 내어주었고,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여기저기 모여자곤 했다. 모든 것이 풍성했고, 북적이고 활기찼다. 설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 오랜만에 만나는 사촌들, 그리고 두둑한 세뱃돈까지. 설을 기다리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금의 명절 풍경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이제 차례는 성당에서 합동 연미사로 지내고, 친척들은 긴 연휴를 맞아 휴가를 떠난다. 중고등학생인 조카들은 명절 연휴에도 학원에 가느라 바쁜 것 같다. 그럼에도 집집마다 명절의 모습은 다르겠지만, 매년 설이나 추석이 되면 귀향길 도로가 막히고 기차표가 매진됐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여전히 명절은 그리운 가족과 재회하는 특별한 날인 것 같다.

기대와 그리움으로 명절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로부터 받게 될 스트레스를 걱정하기도 한다. 명절에 해서는 안 되는 질문 목록('공부는 잘 하냐, 결혼은 언제 하냐, 취업은 했냐 등)'이 매년 떠도는 것을 보면, '가족이니까', '걱정돼서'라는 이유로 지켜야 할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 적지 않은 듯하다. 가족상담에서는 가족을 하나의 '체계'로 보며, 그 안에서 응집성과 자율성의 균형을 강조한다. 응집성은 가족 구성원 간 정서적 연결의 정도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에게 유대감을 느끼는 힘을 뜻한다. 적절한 응집성이 있는 가족은 정서적 유대와 소속감을 바탕으로 서로를 지탱해 주고, 위기를 함께 견뎌낼 수 있다. 반면 자율성은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 가치를 독립적으로 유지하면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정도를 말한다. 자율성이 유지될 때 우리는 상대방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고 각자의 감정과 시간, 경계를 지켜줄 수 있다. 응집성과 자율성이 높고 낮은 정도로 조합될 때, 가정은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응집성은 높고 자율성은 낮은 경우, 가족은 친밀하지만 간섭이 많고 경계가 흐려지기 쉽다. 응집성은 낮고 자율성은 높은 경우에는 정서적 교류가 부족해 위로나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고 필요할 때 함께하지 못할 수 있다. 둘 다 낮다면 관계는 소원해지고 갈등은 쉽게 번지는 불안정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된다. 반대로 둘 다 높은 경우에는 친밀함 속에서도 각자의 선택과 사생활이 존중되어, 가깝지만 과도하게 얽히지 않은 안정감이 유지될 수 있다.

결국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열정도, 차가운 냉정도 아닌 것 같다.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은 필요할 때 기꺼이 손을 내밀고 함께 있어줄 수 있는 열정과, 상대의 선택을 믿고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볼 줄 아는 냉정함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닐까. 가까움과 거리감 사이에서 서로의 경계를 지켜주는 배려가 있을 때, 명절은 '피곤하고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날'이 아니라 '기다려지고 즐거운 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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