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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작년 8월, 친정 노모 별세로 인하여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었다. 매일이다시피 심신이 무기력했다. 이 때 외출하기도 싫었다. 친척 및, 친구들 전화도 기피 하곤 했었다. 또한 손끝 하나 까딱 하기 싫었다. 그래서 날만 새면 침대 위에 널브러져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는 날이 잦았다. 이즈음 낯선 번호로부터 몇 번이나 전화가 걸려오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상냥한 여성 목소리가 스마트 폰을 통하여 들려온다. 그녀는 나긋나긋 한 음성으로, "여긴 보험 회사인데 보험 가입하시라고 전화 드렸습니다." 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자마자 왠지 대꾸할 기운조차 없어 짜증이 났다. 만사가 귀찮았던 터라 자신도 모르게 힘없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보험요? 들었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일이다. 눈에 익은 번호로 또 전화가 걸려왔다.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선생님, 지난번엔 혹시 어디 몸이 편찮으셨나 봐요. 제 전화를 힘없게 받으셔서 끊고 나서도 한동안 걱정 했습니다. 보험은 들지 않으셔도 됩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곤 젊은 여성은 전화를 끊는다. 예상치 못한 그녀 말에 처음엔 의아했다. 한편 뜻밖의 호의에 의혹이 일기도 했다. 그리곤, '필경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서가 아닐까· 또 보험을 권유하려고 그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날 그녀가 권하는 보험 가입도 거절한 필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녀는 필자 건강을 걱정 했다고 하잖은가. 이 생각에 이르자 상대방 진심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한 게 아닌가 싶어서 그녀 말을 새삼 곱씹어봤다. 그러고 보니 보험 판매원 여성은 그날 이후로 더 이상 필자에게 보험 권유의 전화를 하지 않았다.

비로소 그녀의 진정성이 헤아려지자 갑자기 시린 가슴에 온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그때 필자의 전화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건강을 걱정 해줘서 이다. 요즘 타인 일에 관심 갖고, 더구나 상대방 건강까지 진심으로 걱정 해주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험을 판매하려 했던 여성이잖은가. 필자는 당시 그녀가 보험 가입을 권유할 때 대화 도중에 냉랭하게 말한 후 전화까지 끊었었다. 이 때문에 자신의 뜻이 결렬되기도 했다. 하물며 필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그러므로 더는 필자의 건강 따윈 염두에 둘 필요가 없을 텐데 그녀는 남달랐다.

이 여성은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강한 성정이었던 것이다. 이 또한 타인에 대한 이타심이 없다면 불가능 한 일이다. 실용성과 합리적 계산이 난무 하는 요즘이다. 대인 관계도 이해타산에 얽혀 눈 저울질 하는 세태 아닌가.

이런 각박한 세상이어서 인가보다. 요즘 지난날 보험 판매원 여성이 전화로 건넨 다정한 말 한마디를 떠올릴 때마다 전기장판보다 더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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