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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2.04 15:58:53
  • 최종수정2026.02.04 15:58:53

박영순

'파란만장한 커피사' 저자

커피가 아닌 재료들을 섞은 '대체커피'가 국내에서도 나왔다. 대추씨와 치커리 뿌리 등 12가지 천연 원료를 배합했다. 앞서 2019년 미국의 A사가 치커리 뿌리와 야자대추 씨, 포도껍질, 해바라기씨 등에서 추출한 성분을 배합한 상품을 만들어 '빈리스(Beanless) 커피'라고 표기했다. 나무에서 수확하지 않았으므로 생두가 존재하지 않는 커피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북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는 커피나무의 잎을 조직배양해서 대체커피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실용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전언이다. 이들 '원두가 없는 커피'는 나무를 심기 위해 열대우림을 파괴하지 않고, 생두 보관 및 유통에 따른 병원균 오염의 우려를 차단할 수 있는데다 카페인 함량을 손쉽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존중 받고 있다. 빈리스커피는 2022년 미국 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최고의 발명품 200가지'에 선정됐으며, 미국에서는 이미 카페 음료로 판매되고 있다.

사실 빈리스커피의 유통은 한국이 먼저이다. 1961년 군사정부가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을 만들어 커피 수입을 금지시키자 일부 다방이 민들레뿌리나 오미자, 보리, 밀, 치커리, 도토리, 콩 등을 섞은 '대용커피'를 만들어 팔았다. 커피 한국사에서는 이 유형을 '콩피'라고 명명하고, 커피문화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한다. 당시 콩피를 범국가적 산업으로 키웠다면, 한국은 빈리스커피 발명국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것이다.

경제적 필요에 의해 탄생한 기술이 그것을 향유할 문화적 토양과 결합하지 못하면 의미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새겨야 한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가치를 재해석하고 부여하는 역량이 경쟁력이다. 당시의 절박했던 '콩피의 경제학'이 환경과 건강을 위한 새로운 미식 취향이라는 '문화적 코드'와 공진화했다면, 시대를 앞선 혁신을 이루었을 것이다.

기회는 또 온다. 그때 그것을 잡기 위해선 대용커피(Coffee Substitute)와 대체커피(Alternative Coffee)에 숨어 있는 가치를 읽어내야 한다. '대용'은 "본래의 물건이 없을 때, 임시로 다른 것을 씀"을 의미한다. 영어 표기는 "아래(Sub)의 것을 세우다(statuer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위계적 의미를 내포한다. 커피의 역사에서는 18~19세기 유럽, 미국에서 치커리·민들레·보리·도토리·무화과 등으로 만든 음료를 지칭한다. 커피가 결핍되고 부재한 상황에서 임시로 대신 투입되는 제품으로서, 그 자체로는 원본(커피)과 같은 지위를 갖지 못한다.

반면, '대체'는 '서로 번갈아'를 뜻하는 라틴어 '알테르누스(Alternus)'에서 파생됐다. 이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 즉 수평적 관계를 전제한다. 커피가 없어서가 아니라 원본이 있더라도 나름의 가치에 따라 선택받는 동등한 자격 또는 경쟁적 존재라는 의미이다.

며칠 전 베트남에서 콩과 옥수수, 향료를 커피에 섞어 판매한 사람들이 경찰에 검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는 가짜 커피의 사례이다. 하지만 검거된 업자들이 콩과 옥수수를 섞은 사실을 널리 알리고 판매했다면, 적어도 문화이론의 관점에서는 대체커피로서 대접할 수 있다. 대체커피이냐 가짜커피이냐의 구별이 성분이 아니라 그 상품의 정체성을 공개하는 진실성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아이러니는 장 보드리야르가 통찰한 '시뮬라크르(Simulacra)'의 숲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시뮬라크르는 가짜나 모방품이 아니라, '원본 없는 복제'로서 독자적인 현실성을 획득한 존재다. 베트남의 가짜 커피가 원본(커피콩)이 부재함을 감추려 한 기만적인 위장이라면, 당당히 성분을 밝힌 빈리스 커피는 원본이 없어도 커피의 본질을 수행하는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단계로 진입한다. 이는 커피라는 실재(Real)가 사라진 자리에 기술과 윤리로 재조합된 가상이 들어앉아, 도리어 원본보다 더 강력한 호소력을 갖게 되는 현상이다. 대체커피는 커피나무의 열매라는 자연적 원본을 흉내 내는 것을 넘어, 아예 원본의 필요성을 지워버리는 존재론적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원두가 없어야 비로소 지속 가능한 친환경 커피가 된다는 미학적 반전이 얼마나 어필할지 주목된다.

박영순 <파란만장한 커피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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