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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 중후한 여성분이 찾아주셨습니다. 자신을 소개해 주실까요?

- 나 여 태후야.

- 사극에서 막 튀어나오신 분 같아요· 배우 분이신가요?

- 나 참, 여 태후라고. 한고조 유방의 부인 여 태후!

- 그럼, 기원전 중국 한 나라 시절 분이시라고요?

- 그렇다니까, 웬만하면 다 나를 알아보는데 많이 무식하네. 서태후, 측천무후와 함께 나를 중국의 3대 악녀라고도 하더라고. 진실을 모르는 게지.

- 아, 그 잔인한 여 태후.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 요즘 것들은 판단이 가볍고 생각이 너무 짧아, 내가 못 올 데를 왔네. 시대와 상황 속에서 행동을 파악하는 능력이 하나도 없네.

- 어린 시절, 결혼 전 생활은 어땠나요?

- 다른 사람들하고 차이가 없었지. 좀 생활이 여유 있었다는 정도였어.

-부군하고는 어떻게 만난 건가요?

- 내 아버지 안목이 빼어나셨어. 시원찮아 보이는 원석을 알아보시고, 다른 것 하나 안 따지고, 미래의 가능성만 보고 나를 맡기셨지.

- 결혼에는 만족하시나요?

- 그런 게 어디 있어? 나 고생 엄청 했어. 그래도 보란 듯 살기는 했지. 만족보단 그런대로 내 마음대로 추억할 만한 삶을 살았다고 해야겠지.

- 언제가 제일 고생스러우셨나요?

- 시부와 함께 항우에게 포로로 잡혀 있을 때였지. 생사와 장래가 불투명하고 하루하루 마음이 무척 불편했어. 항우를 통해 들리는 소문도 절망적이고.

- 뭔 소문을 들으셨어요· 그 기간이 얼마나 돼요?

- 정말 무식하네. 나는 불안해 죽겠는데 남편이라는 작자는 예쁜 계집과 놀아난다지, 시아버지를 죽인다 해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반응이 없지. 그게 거의 두 해하고 반년쯤 되었어. 끔찍했어.

- 결국 부군께서 초의 항우를 물리치고 최후 승자가 되어 황제가 되고 그 덕에 태후가 되신 거잖아요, 고마움도 크셨겠네요?

- 다 명암과 희비가 함께 있는 거더라고. 권력이 있으면 부인이 참고 살아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 척 부인과 황태자 문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 그게 크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어.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많았지.

- 너무 잔인했다는 말도 많아요, 많은 이들을 그렇게까지 잔악하게 다루어야 했나요?

- 그 시절과 장소를 모르니까 그래. 일을 어설프게 처리하면 내가 당해. 통치에는 두려움만큼 효과적인 게 없어.

- 그렇다 해도 조왕 여의나 척 부인에 대한 건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잖아요?

- 크게 봐야 한다니까, 나라가 평안하고 서민들 살기 좋았잖아· 뭘 제대로 모르면서 남을 비난하려고 해?

- 대부분의 평가가 그렇다는 거예요. 이제 다른 이들을 처벌할 능력도 없잖아요, 내가 무서워할 이유가 뭐예요?

- 내가 힘을 쓸 때였으면 내 한 마디면 삼족을 멸했을 거야.

- 한의 건국에 공이 큰 이들을 제거한 이유는 뭔가요?

- 세월 지나면 그들이 문제가 돼. 황제가 어리면 더 말할 것도 없지. 내 아들을 괴롭힐 것들인데 어쩌겠어.

- 인간답지 못한 "천하의 악녀"라는 평가는 어떠세요?

- 그런 거 신경 썼으면 그렇게 못하지. 내 결심이 서면 누가 뭐라 하든, 그대로 밀어붙였어. 그게 내 삶의 자세야, 어려움을 겪으며 터득했다할까.

- 참, 최근 들어 이해 못 할 정치지도자들이 여럿 눈에 띄어요. 정치의 도리를 떠나 인간답지 못한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다 사정이 있겠지. 나는 뭐라고 한두 마디로 말 못해.

- 전쟁은 늘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왜 싸울까요?

- 간단해, 절실한 필요보다 욕심이야, 욕심! 항상 힘 있는 것들이 문제야. 그들이 늘 시비를 걸고 싸움을 일으키잖아.

- 천년이 두 번도 넘게 지났어요.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시죠.

- 살기는 무척 좋아졌는데, 비교하는 게 문제야. 그냥 만족하고 살면 좋겠어.

- 아무리 좋게 평가하려해도 어렵네요. 비정한 여인 여 태후를 만났습니다. 겨울 가면 봄이 옵니다. 희망을 품고 이 계절을 살아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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