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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익금교를 건너고 있다. 출근시간에 맞춰 달리는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리가 없으면 이 많은 차량과 인파가 얼마나 곤란해질지 모르겠다.

나에게 최초의 기억은 냇가의 징검다리다. 갈래머리 흩날리면서 팔짝팔짝 건너던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으리. 장마가 지면 돌다리가 파묻히고 얼마 후에는 하늘이 풍덩 가라앉는다. 빨랫방망이 소리도 아련히 들려왔다. 이웃집 당숙모도 아랫집 언니도 자배기 가득 빨래를 치대느라 해 지는 줄도 모른다.

냇물을 따라가면 강이 나온다. 보통 나룻배로 건넜으나 한겨울에는 섶다리가 있다. 강물이 줄어들면 Y자형의 교각에 상판을 깔고 솔가지와 진흙을 쌓아서 밟아준다. 어른들은 섶다리를 건너서 장을 가고 우리는 옹기종기 학교에 갔다.

눈 내리는 날은 섶다리도 함박눈에 덮였다. 꽃송이 같은 눈이 강물에 투신하는 게, 한겨울 낙화를 보는 것 같다. 얼음을 지치다 보면 섶다리가 꿈속을 가로지른다. 자연을 닮아가는 강촌 사람들의 정서가 생각나던 것처럼 그렇게.

봄이 되면 유빙조각들이 뽀얗게 떠다닌다. 햇살이 난무할 때는 조각조각 진주처럼 빛난다. 물오리가 오종종 날아드는 것도 그 무렵이다. 섶다리를 만들 즈음 찾아오고 해체할 무렵 철수하는 나그네새다.

우수가 지나면 강변은 파릇해지고 봄장마에 강물은 그득히 차올랐다. 말은 겨울 한철이지만 봄 갈수기에 비로소 철거를 한다. 몇 해 후 다리가 건설되면서 겨울 한 철 섶다리와 나그네새의 앙상블은 사라졌으나 섶다리 밟고 가던 기억이 선하다. 현대식 교량에 비하면 소꿉장난 같지만 철거할 때도 뜯어서 불을 지르면 끝이다.

잔도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다. 절벽에 구멍을 낸 후, 받침대를 넣고 그 위에 나무판을 놓아서 벼랑 끝에 선반처럼 달아낸 벼랑길이다. 외진 산악 지대를 통과할 때 쓰는 공법을 도입했다는 단양군의 잔도를 걸어본 것도 달포 전이다.

까마득한 바위산에서 중국의 검문촉도를 본다. 천야만야 절벽으로 둘러싸인 그 곳은 촉나라의 사천성과 위나라 하남성을 연결하는 길이었다. 북벌에 나섰던 촉나라의 제갈량은 길이 막혀버리자 바위를 뚫고 잔도를 만들었다.

초딩 때부터 읽은 삼국지 배경이다. 위나라는 3만 대군으로 방어했지만 절벽을 뚫어 만든 잔도에 치명타를 입고 무너졌다. 검문 땅을 얻는 자 촉 땅을 얻으리라고 한다. 한 명이 지키면 만 명의 군사도 뚫지 못한다. 이백의 '촉도난'을 보면 '촉으로 가는 길,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구나'라고 할 만치 험하다.

구름도 넘기 힘든 골짜기에서의 싸움은 그렇게 판가름이 났다. 높이 나는 고니도 넘지 못하고 원숭이도 기어오르기 힘들다. 하도 높아서 절벽과 하늘 사이가 한 자도 채 되지 않는다. 서쪽 태백산에는 새라도 다니지만 촉 땅의 잔도는 폭포 소리만 요란하다. 구름다리를 타고 급습은 뜻밖이었으나 영웅들은 그렇게 상식을 뛰어넘는다.

웅장한 사연을 담은 또 하나의 다리를 알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으로 알려진 금문교이다. 두 개의 탑은 대형 군함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웅장했으나 모티브는 거미줄이었다.

세기적인 무게를 지탱하는 건축물도 한낱 미물에게 도움을 받았다. 우리는 인간 외 그 무엇도 아니다. 다리가, 자신의 등을 밟고 가기를 기다리듯 서로가 서로의 버팀이 되고 위로받는 존재임을 숙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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