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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객원논설위원

고려인들은 유난히 목욕을 즐겼나 보다. '하루에 서너 차례씩 목욕을 했으며 냇가에서 남녀가 어울려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남아 있다. 인종이 재위했던 1123년, 송나라의 사절 서긍이 고려에 사행을 다녀왔다가 지은 책이다.

황제를 알현하거나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등 예를 올릴 경우가 있을 때 의식처럼 목욕을 했던 중국인의 눈에는 시도 때도 없이 목욕을 즐기는 고려인의 목욕문화가 참으로 생경했을 것이다.

고려도경의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는 목욕이 중요한 일상이었으며 남녀가 어울려 목욕을 하는 일은 전혀 흉이 되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된다.

고려인과 달리 조선인은 목욕을 조심스러워 했다. 남녀가 같은 장소에서 목욕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혼자 목욕을 할 때도 옷을 입은 채로 몸을 씻었다. 다만 한창 더운 단오, 유두, 칠월칠석, 백중날에는 한적한 곳에서 목욕을 했는데,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에 여인들의 목욕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네를 타다 냇물에 몸을 씻고 머리를 풀어 빗는 단오풍정의 배경은 인적이 드믄 계곡이다. 저고리를 벗고 가슴을 드러낸 채 물놀이를 하는 여인들을 몰래 숨어 훔쳐보는 동자승들의 표정이 익살맞다.

조선의 왕들은 휴식과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욕을 즐겼다. 물이 좋은 온천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관리 7등급의 직책을 내렸고, 관직에 있는 자가 온천을 발견하면 3계급 특진을 시켰을 정도로 왕을 위한 좋은 온천 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피부병이 심했던 세종을 비롯해 세조, 현종, 숙종, 영조 등이 자주 온천을 찾았다. 온양에는 행궁을 설치했다.

일반인을 위한 대중목욕탕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때를 1930년대로 보고 있지만 1900년대 초반부터 공중목욕탕이 문을 열고 신문에 광고했다.

청계천변 무교동에 있던 '취향관'에서 목욕탕을 수리하고 한증막을 설치했으니 많은 이용 바란다는 1901년 광고, 영친왕 탄신일을 맞아 새문 밖 '장수정'에서 무료로 목욕탕을 개방한다는 1902년 광고, 서린동에 '혜천탕'을 신장개업한다는 1904년 광고 등이다.

당시의 목욕탕은 몸을 씻는 장소라기보다 술과 음식을 함께 파는 유흥의 공간이었다. 1901년 7월 개업하여 8월과 9월 동안 자그마치 23차례나 신문에 광고를 올린 취향관은 '동서양의 각종 술과 안주를 준비하고 손님을 접대한다'는 선전을 했다.

이 같은 광고에도 불구하고 서울 서린동의 혜천탕 등 한국 최초의 대중목욕탕은 남에게 몸을 보이는 것이 익숙지 않은 유교문화에 부딪쳐 개업한지 몇 달 만에 문을 닫았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도 대중목욕탕은 대중에게 별 인기가 없었다. 한 신문에서는 이를 목욕을 연중행사로 하는 '일반적 사실' 보다 '때에 대한 애착심'으로 다뤄 한 세기 후의 심심한 후손에게 큰 웃음을 준다.

"조선사람, 더구나 들어앉은 아낙네는 섣달그믐날이 연중에 한번 밖에 없는 '목욕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일반적 사실'이다. 조선 사람이 목욕을 자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돈이 없다는 것보다 위생사상이 보급되지 못하였다는 것보다 몸에 새카맣게 묻은 '때'에 대한 애착심이 만든 것이 아닐까?"

북한의 목욕탕은 아직 열악한 모양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목욕 중인 온천 여자목욕탕에 구두와 롱 패딩코트를 입은 채 들어가 리모델링 성과를 칭찬했다는 소식이 민망한 현장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때에 대한 애착을 운운했던 백여 년 전 기사보다 더 웃기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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