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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두

시인·괴산문인협회장

연초부터 언성(言聲)을 높였다. 사단은 판교역에서 살미역 가는 기차를 놓쳐서 벌어진 일이다. 재작년 11월 KTX 중부내륙선 충주-문경 구간이 개통되면서 살미에서 판교까지 1시간 13분이면 날아가 바로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는 재미를 맛 들인 터였다. 그동안은 괴산에서 고속버스를 이용해 서울에 갔는데 차량정체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쾌적하기까지 한 KTX에 무한 신뢰와 애정을 듬뿍 주었었다.

호사필반(好事必反)이랄까. 판교역은 지하철 신분당선과 경강선에다 KTX-이음선이 통과해선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이 이음선 플랫폼은 두 지하철 승객이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헷갈린다. 이날 나는 승차권에 명시된 5번 홈에 내 시민의식이 명하는 대로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정장 입은 역무원이 핸드마이크를 들고 지금 문경 가는 ktx가 들어왔으니 탑승하라고 반복해서 말했는데 나는 아직 열차가 보이지 않은데 다 타는 곳마다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안내 전광판을 주시하던 내 눈에 열차 머리가 쓰윽 나타나면서 서지 않고 그냥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저 차에 타야 했는데. 순간 다시 4시간 후에나 있는 기차에 타야 하는 낭패감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승차권에 명시된 5번 홈까지 기차가 와 서지 않았는가. 그리고 승무원이 직접 와서 안내 방송까지 할 바엔 좀 더 알아듣기 쉽게 "ktx기차에 탈 승객은 1번에서 4번 홈으로 가서 타라'고 하지 않고 "열차가 왔으니 타라"고만 했는가. 나는 이건 분명히 ktx 측에서 잘못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분한 마음으로 역무실로 가 따졌다. 흥분한 어조로 내뱉는 내 항의를 들은 역무원은 반환 수수료를 차감한 승차권 반환 영수증을 내주면서 자기네가 잘못한 점은 없고 더 이상 손님한테 해드릴 게 없다는 사무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답변하는 태도에 분개하여 내 목소리는 더 높아져 마치 싸움하듯 소리가 커졌다. 순간 하얗게 변하는 승무원의 안색을 보면서 나도 가슴 한쪽이 찔끔했다.

마침, 휴대폰 전화벨이 울려 역무실을 나와 다시 가서 따지지는 않았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 그게 그렇게 언성을 높여 시시비비를 가릴만한 일이었을까. 열차가 정확히 5번 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도 현장에 역무원이 안내 방송까지 했으면 그들은 최선을 다한 것이고, 상황 파악이 안 된 건 나로서 역무원한테 어디서 타느냐고 직접 물어봤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 셈이라는 자책의 칼날이 스치고서야 화를 다독일 수가 있었다.

내 어릴 때 어머니께서는 언제 조용히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너는 남한테 보통으로 얘기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지

말라고 하시며 특히 조금만 성질이 나면 곧바로 언성이 높아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칠십이 넘어서도 아직 어머니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한국인의 기질 중에 욱하는 성질이 있다. 내가 사는 시골 동네에도 별일 아닌데 싸우듯 큰소리를 내며 욱하는 성미를 내는 사람들을 자주 보곤 한다. 나도 그 예외는 아닌 듯싶어 쓴웃음이 나온다. 사람이 늙을수록 고집은 더 세지고 제 성질머리는 잘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우선 나부터 그렇고 또 그런 사례를 주위에서 보고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는 길은 없을까. 이번 예를 봐도 그 역무원을 만나 따진다 해도, 또 어떤 경우 설령 상대가 잘못했다고 해도 언성이 높아짐을 조심하는 노력을

해야 했다. 언성이 높아지면 상대는 감정부터 먼저 상하니까 말이다.

조금만 먼저 참으면 될 것을.

조금만 먼저 소리를 낮추자. 조용히 조곤조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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